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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아포라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아디아포라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목욕물 버리다 아기까지 버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목욕한 물은 더럽기 때문에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에 결코 함께 버려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입니다. 목욕물과 같은 덜 중요한 것을 분별없이 버리다가, 가장 소중한 존재인 영혼들을 버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디아포라’라는 말은 헬라어 ‘아디아폴론’에서 나온 말로써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금하시지도 않은 영역들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 하다 보면 이러한 아디아포라의 영역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오락, 텔레비전 시청, 영화 등의 영역들. 이런 영역들은 실은 쉽게 아디아포라의 영역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역들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죄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아디아포라의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를 어떤 곳에서 드리느냐와 같은 장소의 문제로 고민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인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항상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장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장소, 예배 건물 등은 실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이죠.
바울도 아디아포라의 문제를 좀 더 심도 깊게 로마서 14장에서 다루었습니다. 바울 시대 당시 구약의 엄격한 음식 규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서 모든 것이 깨끗하다 하시는 신약의 말씀대로 음식에 제한 받지 않고, 모든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엄격한 규정의 틀에 계속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채소만 먹으려고 하는 성도의 부류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앙의 정도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먹는 것 자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제를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 자체는 아디아포라의 문제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생활해야 하는 많은 영역들이 아디아포라의 영역들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아디아포라의 영역들을 적절하게 구별하고, 어떻게 신앙과 연결해서 적용할 것인가와 같은 성숙된 적용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술 자체는 음식의 한 영역으로 볼 때 분명히 아디아포라의 영역입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는 표현도 있고, ‘술을 금하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지만, ‘술을 적당히 사용하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 술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이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입니다. 이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지혜롭게 행해야 할 영역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 앞에서 술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이므로 자기 혼자서 남에게 시험들지 않게 술을 마신다면 그것은 죄 될 것이 없다라고 권하게 된다면 알코올 중독자였던 사람에게는 심각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은 아디아포라의 영역이지만,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권하는가의 문제는 실은 심각하게 죄짓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대적으로, 문화적으로 술이 경건한 삶에 끼치는 해악이 많다는 사회인식이 전반적으로 팽배한 사회에서 목회자가 술을 대하는 것 자체가 신앙생활의 소화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오히려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다면, 목회자는 율법주의적 차원이 아니라, 덕과 성숙의 차원에서 술을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시대적인 상황, 문화적인 여건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구별과 지혜로 적용해야 할 사안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할 당시는 적절한 지혜를 사용해서 덕스럽게 적용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세속적인 오락을 즐길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제네바에서의 경건 훈련 과정 등에서 오락을 철저하게 금지하였습니다. 이는 시대, 지역, 개인 등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이러한 아디아포라의 근본 정신을 올바로 이해하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고, 양육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서 삶의 전 영역을 지혜롭게 적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이러한 덕과 성숙의 차원에서 신중함과 지혜로 살아가게 된다면 오늘날 기독교를 향한 부정적 시각을 많이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일수록, 복음의 본질은 변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적용의 측면은 더 성숙되고 덕스러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성숙의 측면이 교회에서 계속 계발되고, 발전될 때 교회는 가장 성숙한 사회를 이 사회 속에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중요한 한 측면입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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