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용사 9]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by AAHC posted Aug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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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 36분)





인간의 기준, 하나님의 기준 (삼상 16:1-13)

1.
지금부터 무려 30여년 전…  제가 대학부 시절에 그 대학부를 이끄셨던 회장 선배님은 언제나 유머가 철 철 넘쳐 흐르는 분이셨습니다.  광고 시간에 그 분이 웃겼던 이야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주 대학부 집회 오실 때 모두들 배꼽의 때를 다 깨끗이 닦고 오십시오 ^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은 몸의 중심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웃기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들의 뇌리 속에 집어 넣고져 했던 그 대학부 회장 선배님은 그 뒤 정말로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향하여서 교회가 어려울 때도 꿋꿋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섬기셨고, 지금은 그 교회의 어엿한 기둥 같은 장로님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그 마음, 중심에 대한 얘기를 함께 나누고져 합니다.

2.
사울 왕에 대한 질문 중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이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사울 왕이 구원받았을까 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울 왕이 잘못 했을 때 하나님께 회개 했더라면 계속 왕위를 유지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울 왕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인 사울 왕이 구원 받았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또한 개인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당사자만이 진실하게 알 수 있는 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첫번째 질문은 제 3자가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이 부분은 하나님과 당사자에게 맡겨 드릴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두번째 질문인 사울의 왕권 계승에 관해서는 성경을 통해서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왕위 계승은 중단 되었고, 그 결과 사울에게서 역사를 창조하는 history maker, 즉 하나님 나라의 역사 창출자로서의 모습은 중단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구원과 구원 이후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구원 이후의 삶 또한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사울의 구원 문제는 쉽게 분별하기 어렵지만, 사울에게서 구원 이후의 삶, 그의 왕 즉위 이후의 삶은 매우 불행했고,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왕이 된 지 일년 후부터, 즉 2년째부터 사울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한 39년 동안 진정한 영적 건강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His Story)를 만들어가는데 참여하고, 도구로 사용되는 영광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하나님 나라 역사 창출의 가장 중요한 직책인 왕의 자리로 임명을 받고 시작했지만, 사울은 그 자리를 온전한 의미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3.
제 나이 48세입니다(한국 나이).  이 나이가 되니, 솔직히 내적인 면에서, 그리고 외적인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면적으로 옛날처럼 그렇게 욕심이 많다거나, 나만 챙기겠다는 그런 이기심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변화를 체험합니다.  성숙되었다기 보다는 약간 포기하는 측면이 많아지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외적으로는 제가 과거에 그렇게 좋아했던 음식을 요즈음은 옛날처럼 그렇게 많이 밝히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먹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점을 가게 되면 가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48세가 되어가는 이 즈음에는 배고플 때 적당히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굳이 고급요리, 맛있는 음식을 애써 찾아가는 그런 열정(?)은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가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친구’입니다.  30대와 40대 중반까지는 소위 사회의 성공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사람을 마음으로 대하기 보다는 일과의 관련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솔직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목사이면서도 제 목회영역은 외적 비교, 성취위주, 목표달성 등과 같은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40대 후반이 되어가자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훨씬 더 소중하고, 인생의 의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친구라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마음과 마음으로 대하는 관계를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자라(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장).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도구나, 자신의 이용물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계산하거나, 이기적으로 대하지 않는-그런 친구 같은 사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친구라야 사역을 같이 해도 할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런 친구 같은 사람과 사역을 하실 때 일할 맛(?)이 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 즉 His Story를 만들어가는데 함께 동참시킬 조건으로 하나님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 이 한가지 조건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4.
사실, 다윗의 외모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 즉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강하게 이끌어 갈 그런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새도 외면한 그런 외적인 강한 면은 결코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갖고 있었던 단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 ‘중심’이었습니다.  다윗은 외모로는 이미 예선전에 탈락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유혹에도 넘어갔고, 자신이 잘못 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 살인까지 행하게 됩니다.  그는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세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는 아버지로서 엄청난 비극을 맛보게 됩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지만, 정작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온전히 인정받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세월 후였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다윗은 도망 다녀야 했고, 수치스러운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다윗을 볼 때 그의 외적인 삶에서 우리가 부러워하고, 잘 했다고 그렇게 여길 만한 면이 많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의 삶이 피로 물든 전쟁의 삶이 대부분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성전을 짓는다고 하자,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그 아들 솔로몬에게 그 임무를 맡기도록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을 통해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단 한가지 기준을 가지고 다윗을 보시면서 그 분의 His Story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단 한가지 기준은 바로 ‘중심’이었습니다.

5.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정말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헌금)?  봉사?  시간?  우주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손을 벌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중심’입니다.

왜 일까요?

마음의 관계만이 진실한 관계, 진심의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관계,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관계, 계산하지 않는 관계, 이기적이지 않는 관계, 서로 보고만 있어도 좋은 친구 관계….

하나님은 그런 진정한 관계를 우리를 향해 원하십니다.  그러시기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가장 처절한 형벌인 십자가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지 않고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고서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실까요?  전지전능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안 되셔도, 십자가에서 안 죽으셔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지전능이라는 말 자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6.
그러나 그 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사랑은 본성상 계산이 아니고, 구원하는 행위 자체에 초점이 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대상에 진정한 목적이 가 있는 것이기에 전지전능하시면서도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겪은 죄인의 방식으로, 인간의 겪어야 할 고통을 대신하는 진정한 속죄의 과정을 그 분은 우리 대신 그대로 겪으셨습니다.  왜?  우리를 중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다윗을 선택한 하나님의 기준은 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인 ‘중심’ ‘마음’에는 바로 그 분이 진심으로 우리를 향하여 갖고 계신 그 분의 ‘중심’ 그 분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 진심의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터질 것 같이 벅차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생활의 참 기쁨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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