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10/06/수] 회개의 자리가 정결한 자리 (왕상 13:1-10)
(설교 시간: 17 분)
[묵상 포인트]
1. 여로보암은 분명히 하나님께 잘못 했다.
-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렸다.
- 하나님의 선지자를 잡으려 했다.
-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자신의 권세아래 두려 했다.
2. 회개를 바르게 하는 길
- 말씀이 언제나 잘잘못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 회개는 즉시, 언제나 깨달았을 때 행해야 한다.
- 죄의 삯는 죽음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행해야 한다.
3. 결론 및 묷상
- 늘 말씀으로 나를 돌아 보자. 그리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임을 잊지 말자.
- 믿음(living faith)으로 살자.
[더 넓고 깊은 묵상의 세계로...]
회개의 자리가 가장 깨끗한 자리입니다 (왕상 13:1-10)
1.
레위기서를 묵상하면서 성전 밖 재와 온갖 제물의 더러운 내장을 버리는 곳을 ‘정결한 곳’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레 4:12). 화장실, 쓰레기통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러한 것들이 있기에 우리 삶이 깨끗해 집니다.
대개 회개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를 적극적, 심지어는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죄성으로 가득차 있고, 죄로부터 벗어 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라면, 성도는 회개하는 심령을 늘 갖고 있어야 합니다. 회개에 대한 깨어 있는 자세는 언제나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주의 표시’가 있기에 우리는 ‘주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창세기 1장과 2장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인간의 더럽고, 추한 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래야 죄성을 가진 인간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처럼 세상 풍조가 교회로 밀려드는 이러한 시대에는 더욱 회개에 대한 경고, 죄에 대한 경각심을 성도는 받아야 합니다. 회개의 장소가 정결한 장소라면, 죄에 대한 경각심 고취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2.
여로보암은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 용사였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왕상 11:28).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사용하셔서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을 향하여 그의 삶이 견고케 될 것 또한 약속해 주셨습니다(왕상 11:38).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이면에 여로보암이 꼭 보아야 할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기 이전에, 왕으로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기 이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이후 타락의 길로 접어 듭니다. 여로보암을 통해서 우리는 타산지석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죄와 관련해서 성도는 적어도 세가지 중요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만이 죄를 죄로 규정 짓습니다.
왕이면서도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던 여로보암에게 나타난 것은 ‘무명의 선지자’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내는 것이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명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여로보암에게 전달합니다. 그는 어떤 타협도 거부합니다. 말씀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죄가 죄로 드러납니다. 이 시대는 상대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각자 기준이 다르니, 어떤 사람에게는 죄가 어떤 사람에게는 죄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혼돈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결코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완성된 예언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떤 예언을 한다고 해도(실은 예언적인 표현을 할 수는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그런 응답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 모든 예언적 표현은 성경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 자체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말씀은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우리는 올인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놓고, 치열하게 씨름하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예언적 표현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뜻하심을 얼마든지 알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에 올 인 하십시다. 삼위일체 하나님, 십자가의 삶,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삶, 주님이 머리 되신 교회를 충성 다해 섬기는 삶, 복음 전파의 삶…. 이러한 삶이 있는지 점검하십시다. 바로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둘째, 죄를 죄로 깨달았으면 꼭 해야 할 것은 ‘즉시’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무명의 선지자가 자신에게 경고했을 때, 즉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는 손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경고였습니다. 경고는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죽음입니다. 죄를 죄로 깨닫는 그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죽음’이라는 결과를 갖게 될 지 모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은 우리가 모르기에 지금 준비하고 있듯이, 회개하지 않고 죄를 품고 있으면, 심판의 날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죄는 반드시 우리는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회개는 미루면 안됩니다.
즉시, 그 즉시 행해야 합니다. ‘즉시’라는 표현은 ‘늘’ ‘항상’이라는 표현과도 같습니다.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으로 느슨해 질 수 있고, 타협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자범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 주일 예배 첫 시간에 행하는 죄고백, 용서함을 구하는 기도는 진실하게, 진지하게 드려야 합니다.
제 경우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간절히 할 때, 그 다음 주는 훨씬 더 죄에 대해서 민감해 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용서함의 기쁨,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고 맛 볼 때, 더 죄를 혐오하게 되고, 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휠 얼라인먼트가 안 된 차를 타고 다니게 되면, 운전대를 늘 잡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곧은 길이라도 운전대를 손에서 놓으면 차는 곁길로 가게 됩니다. 인간은 죄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늘 죄를 좋아합니다. 죄에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내 버려 두면 죄 쪽으로 가게 됩니다. 불나방처럼 죽을 줄도 모르고 그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죄에 대한 가장 깨어 있는 자세는 늘 가져야 합니다.
회개는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잘못 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만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회개,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죄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죄의 결과에 대한 심각성을 가져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관계의 죽음, 자아를 미워하는 자아관의 죽음, 육체가 병들게 되어 결국 죽게 되는 육체적 죽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영적 죽음.
죽어봐야 그때 깨닫는 다면 어쩌면 너무 늦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황이 되기 전에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자세를 늘 가져야 합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첨부파일 '1' |
|---|
새벽 Q.T.
Dawn Q.T.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