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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 17분 31초)

[묵상 포인트]
1. 갈멜 산 위도 중요하지만, 갈멜 산 아래도 중요하다
-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갈멜산 아래로 내려와서 영적 전투에서 실패했다.
- 무명의 선지자는 여로보암 앞에서는 승리했지만, 유대로 돌아오는 길에서 실패했다.

2. 사탄은 우리를 끝까지 노린다
- 그러므로 끝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 벧엘에 머물러 있었던 종교인 늙은 선지자는 나귀에 안장을 채우고까지, 무명의 선지자을 좇아 가려 했다. 
-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성도의 궁극적 목표는 사역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다. 
- 무명의 선지자는 아직 벧엘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시점에서 상수리 나무에 ‘앉았다’.  그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앉아 쉬는 것이 아니라, 불과 20킬로미터 떨어진 유대 예루살렘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3. 말씀으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
- 늙은 선지자는 자신도 천사로부터 들었다고 하면서 먹고 마시고 가라고 권유한다.
- 천사의 말, 선지자의 말이라고 다 맞지 않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과 환경, 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주신다.  그러나 정작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는 ‘성경’으로 모든 하나님의 뜻을 확증해야 한다.  그것만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는 길이다.
- 사람이 행하는 것은 성경의 예언과 레벨이 다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예언, 환상, 꿈 등을 보고 말하는 것은 참조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온 마음을 쏟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할 때, 사람의 말로 혼돈되지 않는다.

4. 결론 및 적용
- 호흡하듯이 말씀 묵상하고, 호흡하듯이 기도하자.  매 순간 성령에 민감하자.


[더 넓고, 깊은 묵상으로…]

끝까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왕상 13:11-19)

1.
우울증, 조울증은 심리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상황 보면서, 주위 여건 보면서, 관계로 인해서, 불투명한 미래를 보면서 마음이 어두워 지는 것이 우울증의 한 증상입니다.  또 많은 경우가 조울증을 겪습니다.  아주 좋은 일이 생기면 매우 즐거워 하다가(조증), 금방 그 일에 허무를 느끼게 되면 금방 울증으로 바뀌게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스스로 지쳐 버립니다.  그래서 조울증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시험을 앞 둔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 시험을 치루고 나면 모든 마음의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 때가 문제입니다.  마음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공부도 하기 싫고, 그냥 놀고 싶고….  그러다 염려가 다시 생깁니다.  허송세월로 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와 자기 자신을 향한 불만이 곧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우울증세를 갖게 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조울증 증세를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갖게 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큰 집회를 섬긴 부흥사는 큰 집회 후 영적 탈진 현상을 겪기 쉽습니다.  육신이 피곤한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까지 피곤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 조울증의 현상을 계속 반복해서 겪는 것은 결코 건강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2.
북쪽 이스라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을 찾아간 무명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경고성 메시지를 여로보암에게 전달합니다.  담대히 전합니다.  단호히 전합니다.  함께 밥도 먹고, 음료도 마시자라고 제안하는 여로보암 왕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는 왔던 길로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할 만큼 강하게, 충실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다하고 난 뒤가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도 북쪽 이스라엘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벧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단지 여로보암 왕의 면전에서 물러났을 따름입니다.  아마 그는 매우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느꼈을지 모릅니다.  감히 왕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돌아 오는 길에 상수리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게 됩니다(14).  그는 여로보암에게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신다고 단호하게 말해 놓고서는 일단 왕의 면전을 빠져 나오자 그 단호함, 결연함이 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상수리 나무에 앉아서 쉴 만큼 그렇게 풀어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벧엘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불과 2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였습니다.  어쩌면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서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임무 수행의 자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벧엘 지경인 지역의 동네 한 상수리 나무 그늘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풀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한번 마음이 풀어지자, 늙은 선지자가 행하는 거짓말에 마음이 현혹되어 넘어 갑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기도 천사에게서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와 함께 밥먹고, 음료도 마시자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성도의 자세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사역자입니다.  성도로 구원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합당한 사역을 주셨습니다.  소명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명을 감당하는 자세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의 가장 큰 소명, 가장 중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주어진 사역을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역은 충성 다해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궁극적인 소명은 ‘사역 잘 감당’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사역 측면에서 이 무명의 선지자는 잘 감당했습니다.  여로보암 앞에서 할 말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소명, 즉 믿음은 상수리 나무 아래에 앉는 순간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사역을 잘 감당하는 능력을 받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무명의 선지자가 믿음을 끝까지 지켰더라면, 사역 완수의 기쁨이라는 성취감 대신에 계속해서 하나님만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도 되돌아가지 말라’(9)는 명령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러나 늙은 선지자는 자신도 천사로부터 ‘함께 먹고 마시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18). 그런데 성경은 이 늙은 선지자의 말은 ‘속임’이라고 말합니다.


3.
성도의 참다운 소명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소명을 감당하는 자세입니다.  소명을 실제로 감당케 하시고, 성취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역자 자신은 도구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정한 소명은 ‘믿음을 끝까지 갖는 것,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완성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예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예언의 은사는 가장 기본적으로 성경의 말씀 자체를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핵심은 삼위일체 하나님, 십자가를 통한 구원, 하나님 나라의 완성,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 완성 등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가장 기본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성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성경 66권)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그 말씀만을 전파하는 것이 가장 주된 예언 말씀 사역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개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거나,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 혹은 환상(꿈) 등은 너무 쉽게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충분하게 성도들의 삶에 필요한 내용으로 선포 되었고, 그것을 확신케 하는 도구로 그러한 예언적 표현이 사용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적 표현은 말씀처럼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마귀도 그런 환상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개인 최면, 자아 도취 등으로 그러한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심리적인 상태의 영향을 받아서 꿈을 꾸는 경우도 실은 많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시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부인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적용은 잘, 바르게 해야 합니다.

꿈, 환상 등을 보게 되면(아니면 전달받게 되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해 보아서 보편적 말씀의 진리와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적 표현은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주관적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적용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예언적 표현을 들었다고 해서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절대적인 사실로 영향 주어서도 안되고, 영향 받아서도 안됩니다.  예언적 표현을 행하는 자를 또 너무 쉽게 폄하해서도 안되고, 또 너무 높은 사람으로 봐서도 안됩니다.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더 훌륭하다거나 더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신 하나님만이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높낮이가 없습니다.

만약 나에게 예언적 은사가 있다거나, 환상 혹은 꿈 등으로 인해 마음에 어떤 메시지가 떠 오르게 되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메시지라 생각되면 자신이 직접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인 차원의 공식적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지상 교회가 완벽할 수 없지만, 교회가 이단적 교회를 내세우는 교회가 아니라면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건설의 권한을 주신 교회(마 16:13-20)에 문의하고, 교회가 이 모든 과정을 밟도록 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예언적 사역을 행하는 단체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예언적 표현을 발표하는 것은 예언 은사를 가진 당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대표적 기관을 통해서 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 감정적 측면으로 빠질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4.
자, 다시 무명의 선지자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늙은 선지자가 전한 ‘거짓 말씀’ 사이에서 분별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첫 실수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자세가 ‘사명 완수’를 넘어 ‘끝까지 믿는 믿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세를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두 번째 실수, 즉 ‘말씀’의 혼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가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인지 한번 더 하나님께 물어보고, 기도해 보고, 그리고 신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했더라면 참된 소명 완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삶에는 이러한 상황이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벌어집니다.  갈멜산에서 영적 전쟁을 벌였던 엘리야는 온 힘 다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도 갈멜산을 내려 왔을 때 자신의 진정한 사명에 대한 자세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소명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명감이 올바랐더라면 그는 갈멜산을 내려와서도 영적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변화산에서 놀라운 환상을 체험했던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성도의 진정한 기쁨은 변화산에서와 같은 그런 환상의 체험이 아닙니다.  그러한 체험 자체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 자체가 성도의 목표가 되면 이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체험위주의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기 쉽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주님만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멜산, 변화산, 팔복산 등 어느 산위에서건, 아니면 그러한 산을 내려온 평지에서건, 오병이어로 5천명이 먹게 된 풍성한 체험의 순간이건, 말씀의 떡만 주셔서 더 이상 육적 떡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건 관계없이 ‘오직 진정한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의 결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견지하고 나아가십시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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