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시간: 19분)
[묵상 포인트]
1. 우리는 누구나 두려움의 어려움을 갖고 있다
-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지도자들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2.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매우 담대함을 보인다
- 그는 아합 왕 앞에서도, 백성들 앞에서도, 자신만 홀로 있어도 담대했다.
- 바알 선지자들에게 무려 9시간의 기도 시간을 주는 기개를 보였다.
3. 엘리야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비와 이슬’이 없는 가뭄, 사르밧 과부의 절대적 궁핍, 그 아들의 죽음
- 그는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다. 즉, 그는 매일 매일 하나님앞에서 살았다.
- 이러한 하나님과의 친근함(intimacy)은 엘리야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서 담대함을 부여
4. 결론 및 적용
- 신앙의 내공은 갈멜산을 올라가기 전에 닦아야 한다.
- 근육이 하루 아침에 이룩되지 않듯이, 3년 반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특별 음성을 기다린 엘리야의 매일 신앙이 그로 하여금 신앙 내공을 길렀다.
- 40일 작정 기도를 권해 본다.
[더 넓고, 깊은 묵상으로…]
신앙의 내공 기르기!
신앙의 내공은 갈멜산을 올라가기 전에 닦아야 한다 (왕상 18:16-29)
1.
엘리야 선지자를 보면서 그의 담대함에 놀라게 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왕 아합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아합은 22년간 북쪽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의 시대에 내전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는 남쪽 유다와도 적절한 외교정책을 한 결과, 전쟁을 치루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며 통치했습니다. 그는 화려한 외교술과 정치적 역량으로 북쪽 이스라엘을 매우 잘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 아합 앞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습니다. 담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 앞에서도 담대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21)라고 호되게 꾸짖습니다. 한 명의 일개 선지자가 전체 백성을 향하여 꾸짖는 장면을 보면 엘리야의 담대함에 매우 놀라게 됩니다.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쟁은 1대 850이라는 숫적으로는 전혀 계산이 되지 않는 그런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이 홀로’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담대했습니다.
갈멜산은 바알과 아세라 산당이 있었고, 이들 선지자들의 본거지 였습니다. 적진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제사를 베풀도록 주도권을 주었습니다. 아침 해뜰 무렵부터 오후 3시정도, 즉 소제를 드릴 때 까지 무려 9시간 정도를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장시간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질문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강한 믿음, 굳센 신앙을 가지라고 서로에게 격려하며 요구합니다. 엘리야를 보면서 이렇게 강한 신앙을 가진 담대한 모습을 부러워 합니다. 당연히 신앙인은 강한 신앙,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신앙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게 될까요?
2.
이러한 엘리야의 담대한 신앙의 여정에는 하나님의 깊은 훈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매우 강한 훈련을 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안 내려 줄 것’이라고 엘리야에게 말씀 하셨습니다(17:1). 여기서 우리는 쉽게 성경 읽기를 넘어가면 안됩니다. ‘비’가 안 오는 것은 어쩌면 일반 자연현상적인 가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까지 없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것은 당시 그 지역에 죽음이 임함을 의미합니다.
이슬은 보통 광야나 사막에서 낮고 밤의 기온 차이로 인해 아무리 가뭄 속에서도 생기는 일반 자연 현상입니다. 그러한 일반 자연 현상 마저도 하나님은 주시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연계의 동물들은 아무리 메마른 사막에서도 ‘새벽이슬’로 인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새벽 이슬마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갖고 있는 작은 소망 마저 완전히 없애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의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없애라는 말입니다. 결국 자신의 말과 노새, 즉 자신의 재산에 의지했던 아합왕은 ‘이슬’도 없는 상황에 손을 들고 맙니다. 그 또한 말과 노새를 위해서 물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18:5).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가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라 할지라도 연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비와 이슬’을 주시지 않는 심판을 직접 자신의 입으로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 또한 동일한 인간이기에 죽음과도 같은 상황을 같이 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십니다. 시냇물을 먹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것도 떡과 고기를(17:6). 이 장면 또한 우리는 쉽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까마귀는 자연 동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까마귀가 떡을 물고 옵니다. 그것도 아침과 저녁에.
이슬도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 상황에서 엘리야는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사람을 통해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자신도 같이 고통당하고,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엘리야는 생존하게 되는 매우 귀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이세벨이 왔던 시돈, 즉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악의 본거지에 사는 사르밧 과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타락하고 악해도 하나님은 그 곳에, 그 상황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엘리야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영적 내공을 쌓게 됩니다. 가장 극한 상황에서도 소망과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끼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대접했을 때 그 사르밧 과부도, 아들도, 엘리야도 다 함께 살게 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 위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지만, 살아나는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체험들의 공통점은 죽음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의 교육 과정이고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엘리야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할 수 있는 죽음을 이기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3.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8:1에 나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시간의 경과로 보고 쉽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바로 17장에 있었던 엘리야의 체험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분명히 비도, 이슬도 없는 가뭄은 계속 되었던 때였습니다.
엘리야는 비가 다시 올 것을 기다리기 보다는,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삼년을 지냈을까요? 다른 사람들처럼 분주하게 비가 언제나 올까라고 전전긍긍했을까요?
어느 날 핸드폰 벨 울리듯이 그렇게 울리기를 기다리며 그 삼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들을 자세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났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날마다 음성이 들리기를 매일 매일 기다렸을 것입니다. 분명히 함께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선지자의 심정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날마다 하나님께 아뢰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가 가뭄이 일게 된 3년 어느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금방 귀를 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3년이라는 기간은 그냥 지나간 3년이 아닙니다. 기도한 기간이었습니다. 믿음과 소망으로 기다린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않는 인내의 기간이었습니다. 바로 엘리야가 3년동안 영적 내공을 자신도 모르게 닦게 된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순간에 구원 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원시키시는 하나님은 수천년동안 구원을 계획 하셨고, 준비하셨고, 역사 속에서 어느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심으로 성사시키셨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구원이 한 시점이지만, 하나님께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준비된 사역이었습니다.
구원 이후의 성장 또한 하루 아침에 이룩되지 않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다시 세계관, 신학관의 재 수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면서 왕궁 생활에 젖었던 자신의 삶을 광야 지도자로 거듭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루 아침에 성령 받고, 사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의 기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모든 말씀과 삶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그 모든 3년 동안 받았던 내용을 다시 상기하게 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근육이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듯이, 신앙의 영적 내공 또한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임하시지만, 매일 성령으로 인도함 받으면서 성령의 넓고 깊은 영적 세계로 날마다 더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베드로처럼 어부 출신이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설교를 행하는 변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베드로도 하루 아침에 그렇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의 훈련 과정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놀라운 담대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믿음의 최고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갈멜산 위에서의 담대함은 실은 갈멜산 밑에서 닦여 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날마다 기도의 삶을 살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가장 극악한 상황 가운데서 소망의 기다림으로 날마다 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늘 영적인 민감함을 유지한 그였기에,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친밀함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분별을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그는 왕 앞에도, 홀로 850명 앞에도, 전 이스라엘 백성 앞에도, 그 누구보다도 가장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4.
저는 개인적으로 영성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것은 40일 단위로 나름대로 ‘작정기도’ 하는 것입니다. 일년이 365일이므로 거의 9회 정도 작정 기도를 행합니다. 매일 제가 행하는 큐티 노트 한 쪽 구석에 ‘1일째’, ‘2일째’ 등으로 적어가면서 40일 동안 ‘특별 작정 기도’를 행합니다. 대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면 40일 동안 어떤 기도를 행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40일 동안 기도를 그렇게 행하면 어떤 경우는 이룩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룩되지 않는 경우는 그 다음 작정 기도를 행하면서 또 기도합니다. 어느 순간 그 기도가 이룩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새벽형 인간이 되어서 새벽 기도를 행하게 된 것, 매일 큐티를 행하게 된 것, 매일 적절한 양의 글을 쓰게 된 것, 개인적으로 우울증 증세가 있었는데 극복하게 된 것, 대인 기피증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극복하게 된 것 등 등….
만약 기도를 행하지 않고, 제가 40일 동안 노력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심삼일 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 순간. 그래서 저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40일 이라는 작정 기도의 삶을 살면서 가장 크게 깨닫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intimacy with GOD)입니다. 40일 동안 늘 기억하면서,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을 실제로 체험함입니다.
엘리야가 담대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는 평소 친하게 관계하지 않았던 하나님을 ‘강한 믿음’으로 선포한 것이 아니라, 평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그 ‘자신의 하나님’을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 파송자로 확신했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담대한 모습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멜산 위에서의 담대함은 갈멜산 밑에서 매일 행해진 영적 생활에서 이룩되었습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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