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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화] 10.26을 돌아보며... (왕상 21:1-10)
(설교 시간: 17분 5초)
10.26을 되돌아보며… (왕상 21:1-10)
1.
나봇의 포도원 얘기. 이 장면은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왔던 얘기입니다. 강력한 통치를 행했던 아합왕이 벤하닷이 이끄는 아람 연합군10만 대군을 물리 친 후, 더 강해진 권력을 이용하여 나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탈취하는 얘기입니다.
성경이 이러한 정치 야사 같은 얘기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기록할 당시 파피루스는 양피지 같은 것을 사용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 가격이 매우 비싼 것이었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에 아무 내용이나 기록하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대충’ ‘아무렇게나’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이 아합에 대한 기록을 하면서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기록한 그 의도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매우 좋은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2.
나봇의 포도원 사건과 관련하여 몇가지 메시지 포인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끝없는 쾌락 본능, 유희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아합은 7천여명 되는 군사로 10만 아람 연합군을 격파하였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벤하닷 왕을 놓아 주는 아량까지 보여 줍니다. 이 후로 아합의 권력은 당시 인근지역에 훨씬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합은 승리가 주는 즐거움, 승리의 희열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고 즐기는 그런 유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당시 포도원은 농산물 수확의 용도 뿐만 아니라, 가무를 즐기는 유희, 파티의 장소였습니다. 아합이 굳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 했던 것은 그러한 유희를 위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왕궁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런 파티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쾌락 추구병을 보게 됩니다.
둘째, 인간 윤리적 삶에 대한 재점검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넘봤던 아합은 매우 윤리적인 접근을 행합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왕의 권력을 이용하여 함부로 탈취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포도원을 준다거나, 좋은 값을 치루어 주겠다고 매우 호의적으로 나봇에게 제안합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보면서 아합의 윤리적 입장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합은 하나님의 토지 원칙(즉, 모든 토지는 하나님 것이고, 사람은 땅을 통해 홀대 받아서는 안된다)을 자신의 윤리적 노력으로 무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된 윤리는 사람을 부분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전인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셋째, 아합의 미성숙을 볼 수 있습니다. 나봇이 자신이 청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잠만 자고, 밥도 먹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 또한 심각하게 보아야 할 점입니다. 아합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인물입니다. 이는 성취를 통해서 자아관을 실현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성취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십자가의 은혜로 이미 구원이 ‘성취’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늘 은혜로 인한 감사와 기쁨 속에 살아야 합니다. 진실로 은혜를 깨달았다면… 그래서 신앙인은 이러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기 보다는 나와 생활 양식이 다르거나, 내가 처한 상황이 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아도 관용하고, 포용하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합은 심한 인격 장애를 겪고 있는 인물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이해할 때 신앙인들은 이러한 인격 장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이세벨의 탐욕추구 본능입니다. 이세벨이 믿었던 신은 ‘풍요의 신’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은 풍요를 추구하는 탐욕의 신이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외에는 결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탐욕의 신 바알을 섬겼기에 자신의 남편이 겪고 있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나봇을 돌로 쳐 죽여서라도 빼앗아서 남편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이세벨은 이러한 탐욕을 자신의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주도하는 쪽으로 사용합니다. 탐욕은 끝이 없기에 지위도, 관계도, 생명도 짓밟고 쟁취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묵상 포인트를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깨닫고 실천할 때 성경은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정작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핵심 의도는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아합의 삶에 대해서 길게 성경은 기록할까요?
3.
아합은 죄인을 표상하는 인물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할 때, 부인과도, 이웃과도, 백성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봇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하나님의 뜻을 표출합니다.
나봇은 아합의 제안, 회유, 위협 등에 대해서 단 한가지로 답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은 왕이라 할찌라도 줄 수 없다고… . 이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즉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함부로 사고 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땅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땅으로 인해 소외 받지 않고, 존중받게 됩니다. 가난이 엄습할 때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50년마다 한번씩 맞이하게 되는 희년이 되면 그 땅은 원래 주인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존중함으로, 사람들을 가장 존중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땅은 하나님과 이웃을 그렇게 잘 섬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왕이 요구한다 할찌라도 땅을 팔지 않는 것은 올바른 일이고, 사회에 진정 정의로운 일이었습니다. 나봇은 정의, 공의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공의만 지킨 것이 아닙니다. 이세벨이 모함해서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 했을 때 타협해서 도망가거나, 자신의 힘을 동원해 무력으로 아합과 이세벨을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의를 분명히 선포한 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희생하며 죽어 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공의와 사랑을 함께 실현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의와 사랑의 실현을 상징합니다. 공의만 있으면, 아니면 사랑만 있으면 그것은 참된 공의도, 참된 사랑도 아닙니다. 사랑없는 공의는 폭력일 수 있습니다. 공의없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 있거나,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4.
이 글을 쓰는 날은 10월 26일입니다. 해마다 10월 26일이 되면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 돌아 봐야 합니다. 1980년 10월 26일에 거의 20년 정도를 한국 전체를 독재정권으로 다스렸던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로부터 저격당해서 죽음을 맞이한 날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르게 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를 살리고, 한국의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의 사람들은 독재정권이 행한 무참한 살륙과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은 결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점수를 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스챤은 결코 이러한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방관자적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서 애매 모호한 태도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정직하게, 정확하게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 소리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 및 비판을 교회가, 성도가 감당하고, 책임지고, 사회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그렇게 지셨습니다. 나봇은 자신의 죽음으로 아합에 대한 불의를 선포했고, 또한 방법론을 폭력이 아닌 섬김과 희생으로 감당했습니다.
아합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지금 시대나 언제나 혼탁한 사회가 우리에게 펼쳐 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바른 길인지 분명히 압니다.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 이 길이 유일하게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압니다.
그 십자가의 길, 함께 걸어가십시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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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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