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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월]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시 92:1-15)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시 92:1-15)
1.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고, 진지한 질문같이 보이지만, 실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인가’로 질문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라는 의미는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하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죄를 드러내 놓고 짓는 죄인과 죄를 숨기면서 남들 몰래 짓는 죄인, 그리고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짓는 죄인과 죄를 죄로 인정하는 죄인. 이러한 구분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의인’을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일반적으로는 착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전제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2.
하나님 만이 의로운 존재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만이 참된 의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계시(보여주신)하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체’를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을 통해서 보여 주시는 것 만큼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천국가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이 하나님을 만나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때 천국 가서 하게 될 것이므로 그 날을 기대하기로 하고, 이 땅에서는 말씀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3.
시편 92편은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이미 시편기자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의 찬양 속에는 찬양의 내용, 즉 찬송을 올려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찬양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수 있는 이유는 찬양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찬양의 이유는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 이러한 일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일들을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지, 일 자체에 마음을 두면서 찬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찬양입니다.
좋은 일도 주시지만, 하나님은 어려운 일도 주십니다. 그런데 지내놓고 보면 그 모든 일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룩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찬양의 궁극적인 내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자체’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속성이라 합니다.
즉, 찬양은 하나님의 속성을 내용으로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인자하심(1), 성실하심(1), 주의 손이 행하신 일, 즉 섭리하심(4), 영원하심(8), 지존하심(8) 등으로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이는 그가 경험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찬양하는 영혼은 기쁩니다. 찬양할 때 우리의 영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그러면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4.
시편 기자는 고백적 찬양을 행합니다. 원래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의인’된 자신을 종려나무, 백향목으로 표현합니다. 종려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나무입니다. 봄, 여름에는 나무가 푸르게 되지만,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엄습합니다. 그러나 종려나무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푸르름을 보여 줍니다.
바로 성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그렇게 늘 푸르게 살아갑니다. 백향목은 1세기에 한 나이테가 생긴다고 할 정도로 영생을 상징합니다.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한 실패가 아닙니다. 성도는 영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속에서도 푸르고,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으로 삼습니다. 이는 신앙고백입니다(15). 고난 속에서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러한 고백적 삶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하게 됩니다(15).
성도는 말로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글로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몸으로 하나님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몸으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시편 92편이 말하는 의인의 의미입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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