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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은 예수님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하나됨은 예수님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제가 성경을 읽을 때 마다 부담을 갖고 읽게 되는 부분이 바로 요한복음 17장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기도 제목이 적혀있는 곳이 바로 이 요한복음 17장입니다. 그 곳에는 여러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성도의 하나됨’입니다.
성도라면 개별 교회를 말할수도 있고, 한 교회 안의 여러 성도님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성도들의 여러 다양한 모임 안에서 ‘하나됨’을 갖는 것이 예수님의 가장 바라는 기도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나됨을 강조하셨을까요?
그것은 신앙인들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하나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즉 삼위의 하나님께서 일체로 역사하시는 것. 이것이 신앙인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세 인격이시며 또한 하나의 존재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이해 되지 않지만, 그렇게 역사하셔야 진정한 창조, 구원, 그리고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사역이 이루어 집니다. 신앙인은 이 삼위의 하나님께서 ‘하나됨’으로 사역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은 구원의 궁극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고, 신앙인은 이러한 하나됨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신앙인들을 향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하나되심 같이 신앙인들도 ‘하나’ 되라고 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됨’의 능력이 그만큼 강하기에, 이 땅에서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됨은 신앙인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누구다 다 아는 노하우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각자 다른 모습을 조금씩 갖게 되더라도 먼저 대화하고, 함께 나누고, 서로 이해하고, 도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다양한 사역이 있었고, 특징이 있듯이, 신앙인들 사이에도 각자 다른 소명, 다른 은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각자 평생 살아가는 목표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함께 하려고 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나만 이해해 줘’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또 상대방이 이해 못한다고, ‘그래, 알아서 각자 갈 길을 가자’라고 해서도 안됩니다. 신앙 공동체는 결코 ‘분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이해를 요구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사역을 행해서도 안됩니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며, 함께 대화하면서 전체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관계의 갈등 이유가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언제나 해야 합니다. 대화는 마음을 활짝 열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깊은 대화)하자’라고.
그러나 신앙 영역 안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한다거나, 성경보다 개인 의사(예를 들어 예언적 표현, 개인 응답을 직통 계시처럼 표현하는 것 등)를 더 높이 여기거나, 기사와 이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사용하지 않고, 개인을 높이는데 사용하는 등과 같은 모습들과는 결코 타협해서 안됩니다. 철저하게, 엄밀하게 반신앙적인 요소들은 정확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기적과 이적을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기적과 이적 혹은 특별한 징조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 건설 위해서, 영광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구약의 교회, 신약의 교회 등의 역사를 통해서 성경 안에서도 조직, 명칭 등의 영역에서 발전했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의 현대 교회도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다양성에 대해서 폭 넓게 보아야 하고, 또 함께 대화하는 측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의 교회이건, 어떤 모습의 교회이건 타협할 수 없는 교회의 핵심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한 영역은 교회가 당장 외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어려움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균형과 핵심 가치를 잃지 않고 나아가면서 ‘하나’ 될 때 교회는 참다운 메시지를 이 땅에 선포하게 됩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모든 교단들이, 각 개체 교회가 ‘통합’(unification)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통합은 각자의 개성을 다 무시한채 무조건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unity)되어야 합니다. 핵심 가치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은채, 대화와 이해, 그리고 협조와 동반의식, 그리고 섬김과 사랑으로 모든 지상 교회들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성으로 가득찬 세상적 풍조로는 결코 진정한 하나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적 하나됨은 이기적 동기에 의한, 계산적, 한시적 하나됨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됨이 아니라 배신과 쟁투와 경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런 불안한 하나됨입니다.
그러한 불안, 불만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 ‘참된 하나됨’을 선포합시다.
십자가를 묵상하시고, 십자가만 따르십시다. 그 십자가의 삶에 하나됨을 이룩하는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목회칼럼
Pastoral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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