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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까지 갈 수 있습니까? (엡 3:1-12)

신앙생활은 억지로 하거나, 이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단순히 영원한 삶을 얻는 삶이라면, 매우 기복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이상입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도 아깝지 않는 것, 헌신해도 기쁜 것.  이런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가치요, 능력입니다. 

신앙인은 그러한 참된 가치, 기쁨, 능력을 얻고, 즐겨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살 만큼 그렇게 가치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가치를 깨달았기에 자신이 감옥에도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을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는 비록 감옥 안에 있었지만, 실제로 그를 가두어 두었던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감옥도 바울을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간수와 몸이 묶여져 있는 상황에서도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바울을 얽매이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바울은 바로 예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로 인해 갇힌 자’(Prisoner of Jesus Christ)라고 표현했습니다.  감옥은 그 자체가 다른 것을 못하게 합니다.  규율이 엄합니다.  모든 것은 명령대로, 규율대로 행해야 합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행하라고 하신 그 말씀 대로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자신은 완전히 감옥에 속박된 자처럼, 그렇게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 번역본(RSV)에서는 이를 prisoner for Jesus Christ (그리스도를 위해 속박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자신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를 따라 가게 되니, 어디까지 가게 됩니까?  바로 이방인까지 가게 됩니다.  3장 6절에 나타나는 표현은 2장 5절에 세 번 ‘함께’라는 표현을 연상케 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바울이 그토록 따랐던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들과 ‘함께’ 하십니다.  바울에게 이방인은 지구에서 달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먼 거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 분을 위해서 감옥에 갇힌 자라고 할 만큼 따랐던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과 ‘함께’ 하시기에 바울 자신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7). 

당시 유대인에게 이방인에게로 나아가는 것은 감옥에 가는 것 보다 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그 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그 분께서 가신 그 영역, 즉 이방인의 영역이기에 바울은 그 영역까지 나아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참 복음을 듣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참 하나님을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감옥까지 갈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신앙 생활 상담 문의: 배헌석 목사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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