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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막-No.18] 기적에 대하여... (막 6:30-44)
(설교 시간: 17분 50초)
기적에 대하여 (막 6:30-44)
1.
기적을 믿으십니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인 사건,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신 사건 등은 모두 기적의 영역과 같은 것들이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기적이 등장한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돌 하나 던지지 않았는데 그냥 무너지고,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는 등 성경은 기적을 너무나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과연 기적은 있는 것일까요? 기적을 믿으십니까?
2.
기적에 대해서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기적과 같은 상황은 단순히 그 사건을 기록한 사람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지, 실제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한 어린아이가 자신이 갖고 있던 도시락을 꺼내서 제자들에게 주자, 나머지 사람들이 자기 먹을 것을 자기만 갖고 있었던 사실이 부끄러워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후, 모두가 각자 지참했던 음식을 꺼내 먹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던 것도, ‘얕은 물가였을 것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도, ‘기절했다가 깨어 났던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 어떤 기적 사건도 인간의 합리적 생각으로 변화시켜서 받아 들이거나, 아예 없는 착각, 심리적 기술 등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 어린아이가 바친 보리떡과 물고기로 제자들에게 나눠 주셨고(41), 이 나눠 주신 장면은 진행이 계속된 그런 모습을 설명하는 동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기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현재 이성적, 합리적 사고의 틀을 뛰어 넘는 것을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100년전에는 지금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현상들이 모두 기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 가는 것 자체, 근시를 가진 사람이 안경 혹은 렌즈의 힘을 빌어서 시력을 회복하는 것 자체, 고도로 발달된 의학 기술 등으로 인해 불치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소생하는 경우 등 불과 100년전만 하더라도 당시의 사고와 기술 등으로 볼 때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오늘날 너무나 많이, 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적이 나의 사고관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기적이 나의 과학적 합리적 논리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기적의 존재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너무나 유아적인 사고관입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절대적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고체계를 뛰어 넘는 일을 인간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금, 단지 이해를 못할 따름이지, 조금 지나면, 그리고 하나님을 뵙게 될 천국에서는 얼마든지 이해하거나, 하나님 자체로 인해서 받아 들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면 무엇이든지 못 할 것이 없습니다.
3.
기적’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기적을 또 다른 관점에서 잘 못 이해한 경우입니다. 공관복음 모두에 이 오병이어 기적 사건은 등장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이 기적 사건보다 그 다음날 일어난 예수님의 ‘생명의 산 떡’에 대한 설교를 훨씬 더 길게 기록합니다(요한복음 6장).
사람들은 기적에만 초점 맞추었습니다. 기적을 주신 분에 대한 이해, 즉 기적의 본질적인 의미를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6).
만약, 우리가 기적과 같은 현상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신비주의, 사이비로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백성들이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을 주신 것은, 과거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동안 매일 만나로 먹이신 것을 기억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 먹고 12광주리를 남게 하신 것은 12지파를 위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적만 바라고 나아오는 경우,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기적을 안 일으켜 주시고 오히려 ‘요나의 표적’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기적의 진정한 의도라는 것입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을 구원하시고, 죄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영생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못한다면, 그 기적은 잘못 이해된 기적입니다. 또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이해한다면, 실은 기적의 유무에 관계없이 진정한 신앙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4.
기적에 대해서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기적이 없다고 한다면 인본주의적 자세입니다. 기적’만’ 생각한다면 참된 구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신비주의적 체험주의적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기적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내가 믿게 된다면, 그리고 남을 위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도록 돕는 상황이라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기적을 구하지 않는 것도 잘 못 입니다. 기적만 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선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매 순간 구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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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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