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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과 사명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엡 5:22-33)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교회이고,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 교회를 섬겨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몇 가지 교회와 관련된 사항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회론의 정립이다. 바울은 교회를 말하면서 개교회를 말한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 가정 교회, 그리고 교회의 여러가지 모습들(가정, 관계, 사회구성 요소, 개인 성도)을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전체는 교회에 관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큰 비밀이라 할 만큼 신비한 것이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2). 그런데 그 교회를 말하면서 바울은 곧 바로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33)고 하신다.
여기서 “그러나”라는 표현은 “이제” 혹은 “여하튼”이라는 의미로 마지막 결론을 얘기할 때 표현하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결국 교회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가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교회를 얘기하면서 또한 동시에 가정을 얘기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부모 자녀 관계, 그리고 종과 상전의 관계를 얘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서 “주 안에서”(6:1), “주께 하듯 하고”(7) 등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기본임을 얘기하고 있다.
분명히 성경은 개 교회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체 교회, 보편 교회를 훨씬 더 많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흔히 교회 라고 말하면 개 교회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 속에서 쌓여지게 된 잘못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카톨릭, 유대교, 이슬람에서는 교회 혹은 회당, 모스크 등을 말할 때 다 하나의 보편 개념을 말한다. 그래서 세계는 하나의 교회, 회당, 혹은 모스크만 있다. 물론 이 때의 개념은 하나됨의 개념보다는 각자의 개체를 무시하는 통합의 개념적 의미가 더욱 크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신적 권위까지 놓게 되는 잘못된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너무나 개별 교회화 되어 버렸다. 개교단화 되어 버렸다. 개인교회 안에서는 너무나 교회적인 개념이 강하지만, 서로 함께 하는 면에서는 교회의 의미가 갑자가 많이 상실되어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통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됨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감리교회에서는 그런 점에서 서로 연결이 잘 되어 있다. 씨알씨 같은 경우도 잘 되어 있다. 교단 분담금 등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다. 씨알씨에서 제일 교회, 제이 교회 등은 모두 연결된 형제 교회를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만들어 간 것이다. 씨알씨에서는 자기 건물을 1달러에 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둘째, 결국 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의 기본적인 대상이 바로 사회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교회는 어디를 위하여 있는 존재인가? 사회를 위하여 있는 존재이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사회를 떠나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교회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바로 교회가 속한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를 보면서 평가를 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 되어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매우 많다. 디트로이트 한국 직항 노선을 개설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에 교회가 하나 되면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전 미국 사회의 기도의 날에 정부 건물 앞으로 간 적이 있었다. 앤아버 큰 도시에서 약 10명도 안 모였었다. 이것을 보면서 교회가 좀 더 달라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 이 앤아버를 섬겨야 한다. 이 지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 즉 하나됨과 다양성이 조화 되고, 또 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단체가 갖지 못한 모습,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내의 사명(22), 남편의 사명(25)이 각각 다르다. 아내의 사명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남편의 사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크고 작고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다스리는 자가 큰 자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큰 자가 곧 섬기는 자라고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각자 다른 은사가 결코 높낮이가 될 수 없다.
주시는 대로 받아야 한다. 왜? 우리는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양들일 따름이다. 돌아온 탕자일 따름이다.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들일 따름이다. 은혜를 인정하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9시에 와서 9시간 일하건,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하건, 관계없이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일만 시켜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에게 맡겨준 일을 감사하게 주신 그대로 할 따름이다. 죄인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하나님의 질서를 인정하자.
그러면 교회, 성도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그대로 잘 사용하게 된다.
넷째, 그러나 더욱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그 사랑으로 교회는 자신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교회는 교회다워 진다. 십자가의 사랑을 인정하자.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결코 십자가는 온전하게 적용되지 못했다.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은 아마 1618년부터 30년간 있었던 30년 종교 전쟁이었을 것이다. 구교와 신교, 즉 십자가를 믿는 두 기독교의 양대 산맥이 전쟁을 벌이는 참담한 모습이 역사 속에 있었다. 이 30년 전쟁을 치루면서 독일에서만 1천만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 십자가가 온전하게 적용되지 않은 모습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가정에서건, 교회에서건, 사회에서건, 남편이건, 아내이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처럼”(십자가 지신 것 처럼) 사랑하면 역사는 바뀌어질 것이다.
(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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