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팔국의 한 마을-앞으로 품고 계속 기도하기를 원하는 마을. 하룻 밤을 이 마을에서 자고, 그 다음 날 가장 높은 곳인 이 곳에 가서 마을을 품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사진 왼쪽에 모스크가 보입니다. 인구 5-600명의 작은 이 마을에 모스크가 두개나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십자가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의 능력 (눅 10:1-24)
누가복음 10장은 복음 전파의 핵심을 전하는 성경구절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의미가 있다.
선교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한 구절 구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Luk 10:1)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 선교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시려는 것, 즉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때 가장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된다. 삶의 전 영역을 선교사적으로 살아가라. 이 말은 직업을 버리고 선교사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삶의 전 영역의 최종 목표를 선교에 맞추라는 말이다. 기업을 경영해도 돈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선교가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Luk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 실제로 이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4/5를 훨씬 넘게 있다. 추수 할 것이 많다. 아주 많다.
(Luk 1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어린양은 약하다. 이리 가운데 갈 때 가장 위험하다. 그것이 선교이다. 그러나 어린양에게는 목자가 있다. 양은 목자를 의지한다. 선교는 철저한 의지이다. 선교는 철저한 나약함의 선포이다. 그러할 때 영광은 목자되시는 하나님이 받으신다.
(Luk 10: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 돈이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할 때 진정한 능력 선교를 할 수 있다.
(Luk 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 평안을 아는 자 만이 평안을 전한다. 선교는 종교화된 어떤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생명, 사랑, 평안 그 자체이다.
(Luk 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 오리라 => 선교하는 사람이 실은 더 큰 복을 받는다.
(Luk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 하나님께서 먹여 주신다.
(Luk 10: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 굶기지 않으신다. 잠을 못자게 되면 기도하라. 못 먹게 되면 굶식하지 말고, 금식기도 하라. 굶식과 금식의 차이는 알고 있죠?
(Luk 10: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이다. 눅 9장 참조.
(Luk 10: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 그럴 때도 있다. 결과는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께 결과를 드려야 한다.
(Luk 10: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줄을 알라 하라 => 내가 연연해 하면 안된다. 나는 전하는 자이다. 결과까지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전하는 자의 직무 이상을 넘는 것이다.
(Luk 10: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심판 또한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가장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
(Luk 10:13)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 선교자는 울면서 다녀야 한다.
(Luk 10: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
(Luk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 내가 다니고, 살고 있는 지역을 향하여 이런 마음으로 외쳐야 한다. 000 아! 언제가지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Luk 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나는 예수님께서 전권이양해서 주님을 대신하는 가는 전권대사이다.
(Luk 10: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 선교의 결과는 당연히 기쁨이다. 귀신도 감당하지 못한다.
(Luk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선교할 때 사단이 패배한다.
(Luk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 죽어도 끝이 아니다. 순교는 새로운 씨앗의 시작이고, 엄청난 부흥의 밑거름이다. 그러므로 겁날 것이 없다.
(Luk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 더 큰 선교의 기쁨은 바로 나의 영혼이 부유해 지는 것이다.
(Luk 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선교는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한 자가 선교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게 된다.
(Luk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 선교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이다.
(Luk 10: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 이 선교를 행함으로 참된 복받는 자 되기를 바란다.
(Luk 10: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 나는 선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좋은 눈을 가졌는가?
이 누가복음 본문을 계속 묵상하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반복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선교는 전도를 포함한 포괄적 의미임을 밝혀 둔다.
(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