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 73:1-17)
보통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 특정 민족만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고백되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다.
그러나 시편 73편은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에 ‘하나님’(엘로힘)으로
시작한다.
이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아랍세계에 가면 하나님을 ‘알라’라고 한다.
카톨릭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표현한다(하늘의 신).
한국에서는 천지신명이라는 표현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두 일반 세계에서 우리가 함께 인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절대적인 신의 개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인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앙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교회 안에서만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일반 삶의 영역에서도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시다.
술과 담배를 얘기할 때, 분명히 술과 담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가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서 접근할 때 신앙인은 더욱 분명하게 술과 담배의 문제를
삶의 전 영역에서 거룩한 자로서 접근해야 할 영역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시는 그 하나님과의 관점에서
신앙인이 갖게 되는 몇가지 문제들이 있다.
‘나는 거의 실족할 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2)
신앙인이 신앙적 갈등을 겪는 것은 얼마든지 정상적인 일이다.
문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 진정으로 문제이다.
모든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바른 사람이다.
첫째, 악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볼 때이다(3).
4절 이후로 그런 사람에 대한 모습이 나온다.
죽을 때까지 악한 사람이 잘 되고, 고통도 없고, 건강하게 살다 가는 사람.
악인의 형통에서 이 형통은 ‘샬롬’ 즉 정신적인 면을 의미한다.
심지어는 영적인 면까지를 의미한다.
그들의 영적인 상황까지 건강하며 적절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또 건강한 모습(4), 물질의 축복(7)까지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합왕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하였다.
여로보암 2세 같은 경우도 가장 악한 왕이었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강력한 시대를 형성한 인물이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세습되는 경우.
왜 하나님은 그 가문을 치시지 않는 걸까?
수많은 독재자들이 2-30년을 독재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일도 행하시지 않는 것일까?
둘째, 다수가 반대할 때이다(10)
이러한 악한 자들에 동조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할 때이다(11).
이러한 상황이 되면 신앙인은 매우 어려워 진다.
욥의 친구들이 집단적으로 욥을 공격할 때…
예레미야를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공격할 때…
도서관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교회 차에 신앙과 관련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자기 자신이 완전히 힘이 들게 될 때이다(13-14)
이제는 자기 자신이 힘이 완전히 들 때이다.
모세가 지도자로서 힘들어 지쳐 버리게 될 때.
엘리야가 힘들어 지쳐 버리게 될 때.
‘나만 남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될 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제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전체 절)
악인에 대해서,
다수의 반대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 세계까지
끝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상대적인 세계에서 절대적인 세계로
외적인 세계에서 내면의 세계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관계와 공동체의 세계로
현재의 세계에서 과거와 미래까지 통달하는 통시적인 세계로
성도는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둘째,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16).
그렇다.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it was oppressive for me)
가장 고통의 밑바닥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가룟유다는 이 곳까지 갔다.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구했던
정치적 해방, 경제적 해방의 상징이었던
은 30냥을 성소에 던지고
자살하고 말았다.
가룟유다의 자살은 죄책감의 자살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는 인간의 절대적 절망에 대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인간을 향하여 절대적 절망감을 가져야 한다.
바벨탑은 결코 하늘까지 가지 못한다.
분명히 중간에 무너진다.
언어가 혼돈되어 무너지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무너진다.
금호 아시아나 형제간의 갈등 관계를 보면서
인간은 얼마나 죄 된 존재인가를 알게 된다.
셋째, 그러나 여기 머물러서는 안된다.
성소로 나아가야 한다(17).
그 성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성도만이 근본적 문제 해결자이다.
이 세상을 가장 진지하게 살아가고, 바르게 살아가고
문제 해결을 바르게 하는 하나님 나라 건설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 기도
1. 하나님 나라 건설자 되기를
2. 선교 보고의 밤과 철야 기도를 위해서, 금식자들을 위해서
3. 8월의 새가족 환영을 위해서
(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www.aahop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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