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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살전강해2] 이러한 목회자 되게 하소서! (살전 2:1-12)
살전 강해 (2)
이런 목회자 되게 하소서! (살전 2:1-12)
1.
오늘 본문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이 본문은 목회자가 기도 제목으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삼아야 할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전도자요, 교회 개척자요, 목회자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자세를 한 절, 한 절을 다 마음을 담아서 썼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마음을 불과 12절을 묵상하는 가운데 너무나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진심으로 전달된 것입니다.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읽으면서 목회자인 저 자신이 이러한 목회자의 자세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 제목으로 삼으려 합니다.
만인 제사장의 의미를 성도님들의 삶에 적용할 때,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결국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 영혼을 섬기면 그 삶은 목자의 삶입니다. 어떤 성도님들이든지 한 영혼 이상은 섬겨야 합니다. 목자의 심정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셀 사역장님들은 오늘 본문을 가슴에 품는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2.
이런 목회자 되게 하소서….
첫째, 영혼에게 다가가는 목회자 되게 하소서(1).
바울은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참된 목회자는 현장으로 갑니다. 말로만, 목소리로만 행하지 않고, 영혼들이 있는 현장으로 갑니다.
둘째,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2).
바울은 ‘많은 싸움’(2) 중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다가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싸움’은 그 의미가 ‘고투’에 해당하는 agony 입니다. 어떤 경기이든지 쉽게 행하는 경기가 없습니다. 온 힘을 다합니다. 사력을 다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경기자의 자세입니다. 사자가 연약한 먹이를 잡아 먹을 때도 자신의 온 힘을 다 합니다. 그것이 참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역을 마쳤을 때는 더 이상 사용할 힘이 없을 만큼 그런 자세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복음만을 전하게 하소서(2).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습니다(갈 1:7-8). 다른 복음이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구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참된 변화와 부흥은 이 복음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 말씀에 의하지 않은 부흥은 진정한 부흥이 아닙니다. 감정적 체험이나, 주관적 체험등으로는 결코 온전한 변화, 참된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변화는 참된 부흥에 오히려 어려움을 줍니다.
진리는 자유케 합니다. 말씀에 의한 변화, 말씀에 의한 자유케 됨 만이 참다운 복음입니다. 이 복음만을 전하게 하소서.
넷째, 바르게 전하게 하소서(3).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간사함으로 전하는 것은 잘못(error)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 아닌 것으로 구원을 얘기하거나, 잘못된 종말론이나, 잘못된 삼위일체를 전하면 그것은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또한 성적으로도 거룩해야 합니다. 삶이 부도덕한 가운데 전하는 것은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또한 속임수 혹은 궤계로 전해서는 안됩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다 육적 병을 고침 받았지만, 그들 중에서 예수님께 다시 와서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인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한 명 뿐입니다.
교회에서 ‘예수 믿으면 물질 복을 받는다’ ‘예수 믿으면 건강이 좋아진다’라는 말을 행할 때, 조심히 말하고, 조심하게 들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과 물질 복을 동일한 원인과 결과로 놓아서는 안됩니다. 물질 복은 하나님께서 주실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진정한 전인적 구원의 문제를 말합니다.
기적과 체험은 신앙 생활에 일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체험이 신앙 생활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은 생활이고, 삶의 전 영역을 다 연결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열광적 체험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해 버리면, 균형감을 잃기 쉽습니다. 바르게 전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소명감으로 살아가게 하소서(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탁 받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위탁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목회자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사역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이러한 소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는 힘이 들지는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명을 가진 자가 바로 목회자, 전도자 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이니까요.
여섯째, 진실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5)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아첨은 남과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잘못된 행동을 말합니다. 탐심은 자기 자신, 즉 깊은 자아는 아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목회자는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아첨하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남들이 볼 수 없는 가장 깊은 마음의 바닥 속에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 마음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일곱째, 동역을 잘하는 목회자 되게 하소서(6).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을 일인칭 단수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합니다. 바울의 의식 속에는 목회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끼리 모이면 쉽게 단합이 되지 않습니다. 왜? 목회 현장 마저 세상적 경쟁 장소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목회자들이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함께 사역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손해 보는 자세로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여덟째, 부모의 심정을 갖게 하소서(7)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고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유모는 아기를 기르는데 전문인입니다. 그 전문인이 자기 자녀를 기를 때는 그 정성과 노력이 말로 다 하겠습니까? 최선과 최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님들을 섬길 때 그러한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홉째, 자기 자신을 다 헌신하게 하소서(8)
‘우리의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했다’ 했습니다. ‘목숨’은 ‘그 자신’을 의미합니다. 즉, 남김없이, 자기를 전부 바쳐서 성도님들을 섬기는 것이 진정한 목회자의 자세입니다. 다 줘서 자기에게 남아 있는 것이 없어야 하며, 또한 다 줘도 마음에 아까움이 없는 그런 사랑하고 섬기는 자세로 섬기는 것이 목회자가 성도를 향해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열번째, 성도님들께 폐를 끼치지 않게 하소서(9)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라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사례비를 받은 경우도 있었고(고전 9:14), 선물을 받기도 했었고(고후 11:8), 빌립보 형제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빌 4:16). 그러나 바울은 섬기는 교회가 매우 어려운 경우는 자신이 전도와 목양을 하면서 또한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성도님들께 폐가 되지 않겠다는 기본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한번째, 성도들로부터 인정받게 하소서(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너희가 증인이요’라고 했습니다. 즉, 성도님들이 바울을 향하여 그 거룩과 옳음과 흠 없음을 인정하고, 존경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성도님들에게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랑과 공의로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오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심을 사람들이 몰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국 진실이 통하고, 진심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부가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존경을 성도들로부터 목회자가 받게 된다면 그 교회는 아무리 외적인 모습에 관계없이 진정으로 생명력있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열두번째, 균형잡힌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11)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모든 것을 다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야단만 치고, 꾸지람만 하지 않습니다. 위로와 경계를 균형있게 행하는 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는 이러한 부모가 갖는 균형성을 가져야 합니다.
열세번째, 성도로 하여금 참된 영광에 이르도록 섬기게 하소서(12)
이 12절의 내용은 참으로 그 의미가 깊고, 귀합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바울은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분이십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영광의 자리로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 또한 영광된 모습으로 되게 됨을 말합니다. 목회자의 영광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님들을 가장 귀한 자리, 즉 영광의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또한 성도로 하여금 영광의 모습으로 인도하는 그 역할이 바로 목회자의 영광입니다.
3.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25장)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목회자가 섬긴 그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것을 보게 된 목회자가 갖는 감격은 얼마나 기쁠까요? 그런데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더 큰 영광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영광된 자리에 같이 있게 된 성도님들과 목회자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다같이 벗어서 영광의 본질되시는 하나님께 면류관을 벗어 드리는 그 광경! 이 장면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가장 영광된 자리입니다. 그 날을 기억합시다. 그 날이 올 때 까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꾸준히, 묵묵히 주어진 목회의 길을 걸어 가도록 기도하십시다.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도 목회자이지만, 셀을 섬기는 셀 사역장도 목회자입니다. 한 가정을 신앙으로 섬기는 영적인 부모님도 목회자 입니다. 그리고 한 영혼이라도 섬기면 그는 분명히 목회자 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참된 목회자의 심정을 갖고 목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목회자 되게 하소서!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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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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