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을 많이 겪으면서
곧 주님이 오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님 오심에 대한 자세는 각자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도 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바울은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바른 자세는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이미 준비가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은 일에 충실하면서 주님 맞이한다고 했습니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
 
이러한 종말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정립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


천년 왕국을 중심으로 본 종말론에 대한 5대 견해! (살후 2:1-12)


1.
말세가 되면 여러 가지 미혹된 모습이 많이 있게 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큰 환난을 겪는 가운데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혹시 이 때가 아닌가 하는 기대, 혹은 염려, 혹은 불안, 혹은 미혹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이 때 바울이 선포하는 말은 단 하나였다.  ‘진리만이!’ (10, 12절).

그렇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오직 진리만 앞세우고 나아갈 때 종말에 대한 자세를 올바르게 할 수 있다.  종말관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종말관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성도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짐을 깨달을 때, 종말관은 성도의 삶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흔히 종말은 천국이 임하기 마지막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천국이 임하기 전에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 왕국이 먼저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교단이나 신학적 입장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따라서 천년왕국, 즉 완전한 천국은 아니지만, 사탄을 결박하고 천년이 차도록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는(계 20:3) 그 천년 왕국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임하느냐에 대해서 각자 다른 견해가 오늘날 성도로 하여금 매우 다른 신앙적 자세를 갖게 함을 알아야 한다.

사실 일반 성도님들은 이러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가지 입장의 차이를 잘 모르고 있다.  어떤 교단이나, 교회, 혹은 선교 단체 등이 주장하는 입장 등에 대해서 쉽게 깊은 판단 없이 열정 혹은 외적 모습만 보고 헌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체들의 사역 방향과 자세 등에는 분명히 이러한 천년 왕국에 대한 입장이 가장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역의 색깔과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년왕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성경적 입장에 대한 정립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은 혼란이 많은 이 시대에 성도가 가져야 할 매우 필요한 자세라 할 수 있다.


3.
그러면 일반적으로 천년왕국과 관련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몇 가지 천년왕국에 대한 다른 견해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대개 5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적 후천년설의 견해이다(Liberalistic 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이라는 것은 천년 왕국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한다는 견해를 말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정말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구원자로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초월적 하나님이라든가 영적 세계라는 것이 아예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예수의 재림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위대한 도덕가인 예수의 교훈으로 세상은 점점 진화되어서 어느덧 지상 낙원이 세워지게 된다고 믿는데 그것이 바로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천국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천년 왕국이란 용어를 지상 최후 지상 낙원에 대한 상징적 용어로 생각한다.

이들은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종교인들이다.  세상이 점점 진화해서 지상에 천국과 같은 천년 왕국으로 발전하고, 이렇게 점점 더 세상은 진화해서 고도의 도덕적으로 발달된 사회가 된다는 매우 소박한 생각을 가진 입장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을 보라. 

과연 세상이 점점 발전하는가?  문명은 발전하지만, 문명이 발전하는 것만큼 인간은 더 악하게, 더 고도로 죄를 짓는다.  무기를 더 발달 시켜서 세상은 더 잔혹하게, 더 대량으로 사람을 죽인다.  인간의 이기심은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죄의 목록이다.  가정은 더욱 더 파괴되어 가고 있다.  식량이 전 세계적으로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아사자가 지구 한 쪽에서는 속출하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 문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인간의 죄성으로 도덕적 사회를 건설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보수주의적 후천년설의 견해이다(Conservative Post-millennialism).
이 견해에 의하면 천년 왕국후 짧은 배교의 시기, 즉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 간의 극심한 싸움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최후의 백보좌 심판으로 인류 역사는 마무리 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라고 보지 않으며, 천년기를 연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살아가게 되면 이 세상이 점점 복음이 확장되고, 전 세계가 점점 기독교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재림은 이러한 평화의 긴 기간인 천년 이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대환란과 배도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 사단의 공격은 재림 직전 잠깐 동안만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이 땅에서의 삶에 무게 중심을 둔다.  문화 건설, 정치적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 사회 복지 국가등을 만드는 것 등이 관심사이고, 그것이 천년왕국 건설로의 바른 신앙인의 자세라고 생각하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 전도 사역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두지 않는다.  사회 구원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

이들의 견해는 너무나 낙관적인 견해임을 알 수 있다.  복음 전파가 전 세계로 전파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전파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대로 사는 삶은 좁은 길의 삶이다.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이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은 세상으로 흘러 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잘못된 운전수가 운전하는 이 세계라는 대형 버스는 지금 정상적이지 않은 잘못된 길로 마구 마구 달려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견해이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전천년설은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임한다는 견해로 그 세미한 부분에서는 다양한 입장들이 제시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실제적인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현되어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견해이다. 

세대주의의 특징은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성경을 볼 때 예언에 대해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을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흔 번씩 일곱번 용서하라는 말은 490번까지 용서하고, 491번째 부터는 용서하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닐 것이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이다.  또 반면에 우리는 결코 그렇게 무한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말이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용서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러나 7일째 안식을 한다든지, 희년 제도 등은 실제로 7일, 실제로 50년째 지켜야 되는 의미가 있다.  이는 결코 상징적인 의미로만 해석 해서는 안되고, 실제로도 7일째, 50년째 지켜야 한다.

세대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근본적이고 계속적인 구별을 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 현대의 교회는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구별해야 하는 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고, 그들 또한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 또한 복음 전파의 한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이들이 복음을 받게 될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했다.  결국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기본적인 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유대인들만을 특별하게 생각해서 유대인들의 특별성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는 온 인류,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 된다.

세대주의는 인류의 시대를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7시대로 나눈다.  즉, 순결의 시대, 양심 혹은 도덕적 책임의 시대, 인간 정부의 시대, 약속의 시대, 율법의 시대, 교회의 시대, 왕국 시대 등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왕국 시대는 천연 왕국 시대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소위 ‘임박한’(imminent), ‘언제 올지 모르는’(any-moment)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성도의 휴거를 실제적, 문자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성도의 휴거 후에 천년기 동안 형식적인 신자들이 모여 마지막에 성도의 진영을 대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기존 교회의 성도들을 많이 비판하는 경향을 갖는다.  형식적인 측면을 비판하면서, 더 강하고, 더 생생한 신앙 생활 할 것을 요구하고, 비판하고, 심지어는 비난하면서 기존 교회 자체를 많이 비판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물론 지상 교회는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님이 그 머리가 되시는 교회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하다고 비판을 넘어 비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세대주의가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기에 주님의 재림 시기를 너무나 ‘임박하게’ ‘절박하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아무리 말세의 징조가 이 시대에 보인다 할찌라도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미혹되지도 말아야 한다(살후 2:2-3).  그런데 이러한 절박함을 강조 하다 보면, 현재 살아가는 삶, 그리고 완전히 변화되지 않은 기존 교회와 신자 들에 대해서 절박한 자세, 비판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깨어 있으려는 자세는 좋지만, 깨어 있음을 넘어 분리적인 자세, 비판을 넘어 비난의 자세를 갖게 됨으로 교회 안에 분리 혹은 분열의 모습을 쉽게 가져오게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넷째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견해이다(Historical Pre-millennialism).
이는 기본적으로 천년기 이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한다는 견해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재림 전에 온 민족의 복음화, 대환란, 대반란과 배도, 개인적 적 그리스도의 츨현 등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교회는 이 환난을 통과해야 하며, 재림은 단일한 사건이다.  즉 죽은 자의 부활과 산 자의 변화가 있고, 휴거가 있고, 지상 재림으로 이어지며, 적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다.  유대인들은 이 때 대량으로 개종한다.  이후 일천년간 예수는 가현적으로 통치하며, 신자들이 왕 노릇한다.  천년기는 죄와 죽음이 여전히 존재하며 최종 상태는 아니다.  다만 악이 거의 사라지고, 의가 차고 넘칠 것이다.  천년기 마지막에 곡과 마곡이 풀려나며, 사단이 득세한다.  그러나 곧 사단은 불못 속으로 들어간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 전에 임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보다 먼저 시간적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까?  천년왕국인가?  단 한번 오심으로 마지막으로 오시게 되는 주님의 재림인가?  당연히 주님의 재림이다.  결국 이 전천년설은 전도에 매우 효과적인 이론이다.  그래서 선교 및 전도에 도움이 되는 이론이다.  많은 성도들로 하여금 전도 및 선교에 동원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이론이다.  실제로 한국에 선교하러 온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이 전천년설을 중심으로 한국 선교에 사용하였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80년대까지 성도들의 70-80퍼센트가 전천년설을 가장 기본적인 천녕왕국설로 받아 들였다.

한국 교회 및 성도들이 급성장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기본적인 천년왕국설이 기본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도 이러한 전천년기 설에 입각한 전도 방법을 말한다.  물론 역사적 전천년기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깨어 있음’ ‘전도 및 선교의 열정 및 헌신’을 일깨워 주는 매우 좋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기설에만 우리가 국한할 때, ‘구원 이후’ 즉 성화가 매우 약하게 되는 약점이 있다.  한국 교회는 전도에는 목숨 거는데, 전도하는 자나 전도 되어서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성장 및 성숙에 대해서는 매우 약한 점을 볼 수 있다.  교회와 세상이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현재 한국 교회의 심각한 상황이다.  전도 총동원 주일 등과 같이 복음 전하고, 구원 받는 시점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전도는 하나의 실적 올리기를 위한 알맹이 없는 잘못된 구원관으로 교회와 성도를 이끌게 된다.  물론 구원 자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참된 구원의 의미는 구원 이후 성장하는 삶, 성숙한 삶으로 성도를 이끌어 가는 것까지 임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무천년설(A-millennialism)의 견해이다.
이는 역사적 전천년설이 갖는 약점 등을 보면서,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천년 왕국의 의미를 살펴 보다가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을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맞고, 그리스도의 초림, 십자가에서의 구원 사역 완성의 의미를 천년왕국의 시작으로 보면서 정립하게 된 천년기설이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심으로 천년왕국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견해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기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실현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천년이라는 기간은 문자적인 기간이 아니라, 천년, 즉 아주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초림 이후 지금까지는 아주 오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오랜 기간은 언제까지 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주 오랜 기간이기에.  요한계시록 20장의 사단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렇다.  오늘날 사단이 아무리  날뛰어도 완전히 주의 백성들을 넘어 뜨리지 못한다.  잠시 발악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워 해서 안된다. 

무천년설의 주장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새 땅 위에 건설될 것을 믿으며, 말씀과 성령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통치하심으로 지금 이 세상 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림 전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무천년설은 현재 개혁교단 등이 주장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미 천년왕국의 시대이므로, 이 땅에서 성도의 삶 또한 중요함을 말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천년왕국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의미있고, 성도가 해야 할 삶을 말한다. 

이미 천년왕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의 현재적 삶을 살아간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그대로 삶의 현재, 처소에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간다.  다가올 천국을 기대하지만, 현재의 삶이 어렵다고 결코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현재의 직업 또한 소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선교 현장을 복음이 없고, 교회가 없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생각하지만,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 그 곳에서 선교사적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삶의 매 순간을 이미 임한 천년 왕국의 백성으로서 즐겁게,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 천국을 기대하며, 준비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임한 천년 왕국의 삶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간절한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현재의 삶을 즐겁게, 누리며 살아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복음 전파의 열망과 간절함과 헌신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삶은 한 마디로,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이 땅에서의 호위호식을 최종 목표로 하고 살지 않는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삶의 근본적인 영역에 대해서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삶의 문화적 측면, 즐겁게 사는 측면, 발전시키는 측면 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최종목표로 여기지 않는다. 

소박하면서도, 의미를 찾고, 그러면서도 즐겁게 살아 가려고 한다.  그렇다고 대충 대충 적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삶이기에, 그 은혜에 대한 개념이 있기에, 가장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자기에게 일의 대가로 주어진 것들을 자신을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 정도로만 감사하며 받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상은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모두 드리고, 헌신한다.

그러나 후천년설에 입각한 사람들은 지상의 현재적 삶을 삶의 최종 목표로 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가급적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한다.

전천년 주의자들은 현재적 삶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거나, 둔감하게 본다.  미래, 즉 곧 오실 주님을 맞이하고, 다같이 주님 맞이하도록 전도 및 선교에 전투적 삶을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깨어 있음의 영성을 강조하게 된다.  강력한 믿음에 의한 삶의 급진적인 변화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내면의 인격이나 관계적인 성숙함 보다는 외적인 결단에 의한 변화, 헌신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약하게 보게 된다.  직장 생활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학생인 경우는 공부 보다 더 급하게 선교현장으로 가는 것을 올바른 것, 가치있는 것으로 여길수 있게 된다.  물론 선교는 중요하다.  그러나 삶의 기본 틀을 선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는 선교에만 초점 맞추게 되면, 선교 자체의 전인적 측면을 잃어 버리게 되고, 결국은 보편 교회의 교회 개념대신, 극단적, 분리주의적 교회관을 갖게 되고, 삶의 일상성을 이탈해 버리는 신앙생활의 극단화의 모습을 갖게 되는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무천년설을 다시 한번 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그러나 아직은 아닌’(already not yet)의 삶을 살아가기에 현재의 삶,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도 무게를 두지만, 또한 복음이 없는 자들에 대한 선교, 미래에 대한 준비 또한 행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 두가지 영역에 대한 균형감을 온전히 갖는 것이 진정한 무천년설을 이해한 자의 삶을 말한다.


4.
참된 결론은 여기 있다.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  즉, 종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이다.  오늘, 주님 지금 오셔도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삶.  그리고 내 옆에, 열방에 있는 사람이 같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삶!  그 기대와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삶이 올바른 성도의 삶이다. 

 

(배헌석 / pastorbae@gmail.com / twitter:@hunsukbae / www.aahope.net / hunsukbae.blogspot.com)


새벽 Q.T.

Dawn Q.T.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98 [새벽-왕하 강해10] 본질의 중요성! (왕하 5:1-27) file 2011.07.15 8288
397 [새벽-왕하 강해9]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왕하 4:38-44) file 2011.07.15 8464
396 [새벽-왕하 강해8] 상황을 초월하여 나아가는 신앙 (왕하 4:18-37) file 2011.07.15 7987
395 [새벽-왕하 강해7] 죽이지 않고, 살리시는 하나님 (왕하 4:1-17) file 2011.07.15 8029
394 [새벽-왕하 강해6] 최후 승리 얻기 위해서는... (왕하 3:13-27) file 2011.07.06 8597
393 [새벽-왕하 강해5]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한 길로만 가라! (왕하 3:1-12) file 2011.07.05 8818
392 [새벽-왕하 강해4] 후계자의 입장이 되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왕하 2:15-25) 2011.07.05 8576
391 [새벽-왕하 강해3] 무엇을 남길 것인가? (왕하 2:1-14) 2011.07.05 8240
390 [새벽-왕하 강해2] 무너지는 왕조, 영원한 왕조! (왕하 1:13-18) file 2011.07.05 8232
389 [새벽-왕하 강해1] 선지자적 삶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왕하 1:1-12) file 2011.07.01 8246
388 [새벽-시편 112편 강해] 예배자가 갖게 되는 능력 22가지 (시 112:1-10) file 2011.06.30 12010
387 [새벽-시편 111편 강해] 예배가 왜 능력이고, 찬양이 왜 능력인가? (시 111:1-10) file 2011.06.29 13760
386 [새벽-시편 110편 강해] 메시야 시-너무나도 중요한 시편! (시 110:1-7) file 2011.06.29 9115
385 [새벽-시편 109편 강해] 저주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 109:1-31) file 2011.06.29 10243
» [새벽-살후 2] 종말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자세-천년왕국론과 관련하여 (살후 2:1-17) file 2011.06.17 8802
383 [새벽-살후 강해1] 왜 믿음, 사랑 소망이 중요한가? (살후 1:1-12) file 2011.06.15 9312
382 [새벽-살전 강해3] 목회자(사역자)의 영광이란? (살전 2:13-20) file 2011.06.10 7873
381 [새벽-살전강해2] 이러한 목회자 되게 하소서! (살전 2:1-12) file 2011.06.09 7865
380 [새벽-살전강해1] 교회가 교회답게 하소서! (살전 1:1-10) file 2011.06.09 8256
379 [새벽-살전강해 서론] 교회론/목회자론/종말론에 대하여... 2011.06.09 8378
Board Pagination ‹ Prev 1 ...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 111 Next ›
/ 11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