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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창세기묵상17] 예배가 없으면 바벨의 혼란과 무너짐이 생긴다 (창 11:1-9)
[새벽-창세기묵상17] 예배가 없으면 바벨의 혼란과 무너짐이 생긴다 (창 11:1-9)
언어가 하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과학이 발달하여 더 훌륭한 건축물을 짓게 된다면 참으로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든 상황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할 때...
인간의 목적인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없어질 때...
인간의 본질과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언어의 하나됨은 언어의 나뉘어 짐으로 혼란과 분열과 나뉨이 생기게 되고
고도의 과학 발달은 무너짐의 결과를 낳게 되고
창조주를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한 삶의 의미는 상실하게 되었다.
예배! 예배자! 모든 상황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
이것이 있을 때 과학으로도, 사람의 하나됨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예배할 수 있다.
이 예배의 회복이 바로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사람들이 난 곳 방언으로 함께 말하고, 소통하게 되고,
그 결과 참된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예배! 모든 상황가운데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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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11:4)
사람은 예배자로 창조함 받았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창조받은 본분대로, 목적대로 살아갈 때, 삶의 가치, 의미, 능력의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이 예배자로 살아갈 때 사람은 가장 귀한 삶을 살게 된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예배를 상실해 버렸다. 그것이 타락이고, 그것이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바벨탑은 또 하나의 타락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이 바벨탑을 하늘에 닿게 하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들에게 예배의 모습은 없어진 것이다. “우리의 이름을 내고”(11:4)의 표현은 자신을 숭배하려는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에서 인간에게로 바뀐것을 말한다.
이미 바벨탑은 타락, 무너짐을 예견한 건물이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어린 양의 제물을 통해 예배를 회복 시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타락이후의 예배는 은혜가 본질이다. 그 은혜를 통해 예배로 나아가야 한다.
예배는 삶의 본질이다. 예배는 삶의 모든 영역, 모든 시간대에 계속 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자주 일이 잘 될 때 격려도 받고, 용기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격려와 자신감이 예배자로서의 자세를 가려서는 안된다. 일이 안 풀리고, 삶에 어려움이 올 때 우리는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염려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예배자로 나아가야 한다.
예배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당시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았다. 야곱은 벧엘에서 자다 깨어난 후 ‘돌단’을 쌓았다. 바벨을 쌓을 것인가? 돌단을 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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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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