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공반] 소선지서 핵심 사상 연구
각 소선지서 연구
[호세아] 신랑신부 관계 / 6:1-3
호세아는 자신의 책에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이 책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체험을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극적인 묘사 수단으로 활용하고 계신다. 여호와의 마음은 자기 백성을 향한 따뜻하고 간절한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11:8). 여호와는 기이한 사랑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14:4). 호세아는 자신의 메시지에서 심판과 사랑을 가장 큰 주제로 삼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는 죄는 공의의 심판을 초래하고 심판 후에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사랑은 언제나 자기 백성의 소망이 된다. 심판과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중심이 되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요소를 나타낸다.
1. 선지자의 결혼 생활(1:1-3:5)
2.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 심판(4:1-13:16)
3. 이스라엘의 회개와 축복(14:1-9)
[요엘] 심판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1:4; 2:13; 2:28
선지자가 환상 속에서 본 메뚜기 떼가 직접적인 저작 동기이다. 메뚜기 떼는 적의 침입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날'의 징조로 서술되고 있다. '여호와의 날'이 범죄한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의 날이 아닌 캄캄한 날이요 크고 두려운 날이며, 해와 별이 빛을 거두고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날임을 인식시킨다.
본서의 교훈은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다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이날은 희망의 날(암:18)이 아니라 저주의 날이 될 뿐이다.
[아모스] 여호와의 공의 / 5:4; 5:24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했다면(6:1-5),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한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속성을 공의 혹은 정의로 파악하고, 이것이 인간 도덕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가르쳤다(5:24). 그러나 그 하나님은 도덕적인 실제만이 아니요 창조의 하나님이기도 하며 계시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4:13).
특히 그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유일신 사상이다. 우상을 말할 때 거짓 것, 헛 것이라 불렀다(2:4). 이는 우상을 가리켜 그렇게 부른 첫 사례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방신의 실재(實在)를 인정하여 나라마다 지방마다 각각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와 하나님도 그중 하나에 불과한, 이스라엘 민족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신인 여호와와 아울러 바알을 섬기는 혼합주의를 택했다. 하지만 아모스는 우상이 실재(實在)하지 않고 다만 헛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당시에 제사는 믿음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 되었다. 믿음과 행위는 없고 불순종의 반복 속에서 의식적인 제사만이 시행되었다. 아모스는 이를 개탄하여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5:21-23).
이것은 공의를 진멸하고 정의에 눈감은 제사가 얼마나 헛된 것임을 지적한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선포하렸다. 이날은 공의가 이행되는 날이다. '여호와의 날'이 오면, 악인들은 심판받고 의로운 '남은 자들'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오바댜] 에돔 족속 심판 / 1:15
오바댜의 예언 내용은 매우 간결하고 짧은 에돔 족속에 대한 한정된 심판처럼 보이나, 담겨 있는 의미는 심오하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게 행한 에돔의 교만하고 악한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심판으로 확대된다(15, 16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묘사하고 있다.
"오바댜 예언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다."(Hengstenberg)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하고 악한 이방인의 태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비교. 욜 3:19). 그러나 오바댜의 예언이 전적으로 미래의 예언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므로, 역사 가운데서 에돔의 행위와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다. 이 징계에 대한 이방인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심판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유다에 대해 방관하고 악한 행동을 가하는 그 자체 또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요소가 되는 것이다.
남은 자가 땅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갱신이다.
[요나] 요나 vs 하나님의 마음(니느웨) / 4:11
요나서의 핵심어는 "물고기"와 "순종"이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사건은 요나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은 오히려 선지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뻗치신 손과 같은 것이다. 물고기 뱃속에 있는 동안 그는 회개하였고 다시 큰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요나가 순종하고 니느웨로 간 행동을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큰 열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가] 겸손의 메시야 / 5:2
미가서의 핵심어는 "정의", "자비", "겸손"이다. 미가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의 모든 삶 속에서 정의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고 외친다.
[나훔] 요나-나훔 => 앗수르에 대한 심판 / 2:8
그는 앗수르의 죄악 중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번째의 것은 군사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한 점이다. 그 결과 피가 강처럼 흘렀으며, 많은 민족이 멸절되었고, 훌릉한 관습과 제도가 폐지되었으며, 전쟁이 곳곳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2:11-13). 정복자 앗수르 인들, 특히 앗수르 바니팔 등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을 살펴보면, 말뚝을 박아 사형을 집행하고 인골로 피라밋을 쌓았으며 그밖에 너무도 끔찍하여 묘사할 수 없는 많은 야만적인 행위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멸시하였던 그 백성들에게 나훔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리라'라고 선포하였다.
나훔이 지적하는 두번째의 다른 죄악은 비양심적인 교역이었다. 그 주변국가들은 아부와 부패로 정복민들의 사치와 악을 만족시켜 주고 있었고 상인들은 황금에 굶주려 온갖 종류의 우상과 세공품, 그리고 악을 조성할 만한 모든 물건을 팔았다. 그들에게 정직과 도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며 부만 얻고 쾌락만 즐기려 하였다(3:1-4). 그러나 나훔은 유다 민족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사자가 오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압제자의 멸망에 대한 감사로써 종교 절기를 지키고 양심적으로 서원을 갚고 의무제사를 드리라고 권고한다(1:15).
[하박국] 참 열매 / 2:14; 3:17-18
하박국 선지자는 나훔과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을 비난하고자 나선 것이 아니다(1:2-4은 약간의 불경건한 자들을 책망한 것이다). 그렇다고 국수주의자처럼 자기 민족애에 빠져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동기는 불의하고 비도덕적인 세력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에 대한 의인의 고뇌이다. 또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박국서의 위대한 주제는 사도 바울(롬 1:17; 갈 3:11)과 히브리서 기자(히 10:38)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으며 종교 개혁과 루터의 개혁 이념이기도 하였다.
하박국서의 핵심어는 "믿음"과 "정의"이다. 이 하박국서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분명한 교훈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고 그분이 작정하신 모든 계획 속에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스바냐] 드러남(Reveal) / 3:17
스바냐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날'이 주요 내용이다. 여호와의 날에는 모든 사람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멸절당한다(1:2-3).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악한 아들과, 유다를 괴롭혀 온 이방 족속도 포함된다(2:4-15). 그래서 '여호와의 날'은 희생의 날(2:8)이며, 분노의 날, 고통의 날, 황무와 파괴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2:14)이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거짓 예배에 있다. 즉, 하나님을 무시하며, 더 나아가 그의 존재를 인정치 아니한 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소인 예루살렘에서 이방신들을 섬기며(1:4, 5), 하나님을저버렸다(1:6).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1:12)는 불신앙에 빠져 있었고, 유다의 지도자들은 부패와 악정과 거짓을 거듭 자행하고 있었다(3:1-8).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인에 대하여 분노를 쏟으실 수 밖에 없었다(1:2, 3; 2:4-18; 3:8).
그러나, 한편으로는 백성들에게 진노의 날이 임박하기 전에 회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2:3). 또한 회개를 촉구하기에 앞서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4-15).
마지막 후반부에서는 선지자의 메시지가 갑자기 변한다. 즉, '여호와의 날'은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것은 진노의 날에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남겨 자신의 의로운백성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의 심판과 종말이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된다. 왜냐하면 그날이 원수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기 때문이다.
[학개] 성전의 의미 / 2:7-9
학개서는 오바댜 다음으로 구약에서 분량이 가장 적은 책이지만 그 교훈은 매우 중요하다.
선지자 학개는 먼저 불순종의 결과와(1:6, 11; 2:16-17) 순종의 결과를(2:7-9, 19) 명백하게 보여준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의 전(殿)에 우선권을 둘 때 그들이 받는 보상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을 역설한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성령의 격려와 힘을 가져온다(2:4-5).
제2장은 '만국의 보배'(만국이 사모하는 것)라 불리는 메시야의 도래를 말한다(7절). 그의 오심으로 재건될 성전은 영광으로 가득차게 된다(9절). 여호와께서는 스룹바벨을 인(印)으로 삼으사 장차 메시야가 오실 사실에 대한 보증을 삼으셨다(23절).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있을 열방에 대한 심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때 만국은 진동할 것이며 부서질 것이다(2:6-7, 21-22; 참조. 히 12:25-29).
[스가랴] 열국 / 14:9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지와 자신이 임재해 계시는 곳으로 삼으려고 하셨다(슥 1:1-6; 8: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이러한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범죄한 자에게는 징벌이 있으며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선포해야만 했다(3:2, 9; 5:3, 4, 8).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열국과 모든 피조물에까지 미친다(8:23; 12:1). 결국 열국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2:13; 6:1-8; 14:16-21).
하나님의 목적은 메시야에게 집중되어 있다. 스가랴서의 전반부에서(1-8장) 메시야는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3:8 '내 종'). 그러나 그는 다윗의 왕통을 잇는다(6:12 '순'; 사 4:2; 11:1; 렘 23:5). 후반부에서(9-14장) 메시야는 다윗처럼 목자로서(11:4; 12:10; 13:7) 그리고 왕으로서(9:9, 14:9) 나타난다.
[말라기] 여호와의 날 / 4:5
말라기의 핵심어는 "십일조"와 "준비"이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을 때, 사실 당연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그들이 도둑질하는 격이 되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그들이 소유한 재물보다 더 많은 것들을 빚지고 있다. 그들의 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간, 재능도 빚지고 있다. 또한 말라기의 중요한 사역의 한 부분은 백성들의 마음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내진 세례 요한을 예비하는 일이다.
(2014/평생 성경 공부반; 매주 수요일 7:15 PM / 토요일 9 AM @ 앤아버 소망 교회 Room #5-강의:배헌석 목사)
* 강의는 누구나 들으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말씀공부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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