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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다니엘서묵상6] 풀무불 앞에서 머뭇거리지도 않고, 떨지도 않기 위해서는...! (단 3:1-18)
[다니엘서 말씀 묵상 노트]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3:18)
너무나 자주 들어 왔던 표현이다. 수없이 많이 설교 시간마다 들어왔던 이 표현을 생각할 때, 과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참으로 강한 신앙,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부러워했다. 만약 내가 이들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나는 그렇게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일제 신사 참배하의 상황이었다면, 과연 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늘 이 표현을 들을 때 마다 어느 정도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이렇게 접근하는 나의 내면과 의식 속에는 신앙의 본질에 대한 매우 중요한 자기 점검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을 용기와 믿음이 나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의 깊은 내용 속에는 ‘나 중심’이라는 신앙의 본질과는 매우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믿는 대상 중심’이어야 한다. ‘나를 부정하고 내가 믿는 대상을 향하여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 내용이다. 그리고 신앙은 ‘결과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적인 것이고, 나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다.
그런데 ‘믿으면 된다’라는 의식 구조 속에는 그 믿음의 결과로 ‘내가 잘 되는 것’ ‘결과가 좋은 것’이어야 ‘한다’ 혹은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기복주의, 이기주의의 거의 차이가 없는 의식이 가장 기저에 깔려 있음을 돌아 보게 되었다.
신앙은 관계성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 ‘신랑’ ‘친구’ ‘언약관계’ 등으로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관계는 결코 ‘결과’에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좋은 결과를 바란다. 그러나 관계에 기초한 신앙은 결과 자체에 모든 무게를 두지 않는다. 자녀가 좋은 성적 받고,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성적 나쁘다고 자녀를 집에서 쫓아내는 부모가 있겠는가? 한번 더 잘못을 행하면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있지만, 실제로 호적에서 제외하는 부모가 있는가? 나는 보지 못했다. 왜? 부모 자녀 관계는 결과 위주의 관계가 아니라, ‘관계’에 기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은 ‘나 중심’이 아니다. ‘하나님 중심’이다. 신앙은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 중심’이고, 그 관계성에 기초할 때, 늘 그 하나님을 묵상하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게 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상황이 두렵겠는가? 관계가 없으면 두렵다. 관계가 있으면 죽음이라는 상황 자체가 관계를 더 귀하게 확인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상황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표현은 내가 부러워할 표현이지, 부담스러워해야 할 표현이 아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이러한 표현을 하면서 ‘부담스럽거나’ ‘두려워했거나’ ‘억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쁨으로 이렇게 고백했다. 왜? 자기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앙은 그런 것이다. 혹시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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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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