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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욥기묵상4]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3:1)
그래도 살아야 한다….
욥의 자기 고백은 참으로 솔직하다. 모든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몸이 상하게 되고,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인 아내의 떠남 마저 경험하게 된다.
이 고통을 이길 자가 누구일까? 하나님은 왜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히 이 모든 근원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앙의 본질적 전제로 나아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한계를 가진 인간은 고통 앞에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고통은 고통이다.
결국 욥은 죽기를 구한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마음의 표현으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다. 자신이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해서 욥의 고통 끝자락까지 가는 자기 고뇌는 끝없이 나아간다.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이러한 고뇌는 계속되고 점층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26)
욥의 고뇌는 계속 된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욥은 계속 고뇌하고 있고, 그 고뇌를 계속하고 있는 욥은 ‘있다’는 사실이다.
고뇌의 끝자락은 어디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그러나 고뇌하는 존재가 있는 한 존재에 대한 부정을 행할 수 없다.
비록 고뇌할 지라도, 자신이 고뇌하는 한, 그 고뇌하는 존재가 있는 한,
고뇌의 끝자락은 아니다.
과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고뇌의 끝자락이 있을까?
인간이 인간 세상의 모든 고뇌의 끝자락까지 다 갈 수 있을까?
실은 없다.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고 존재가 없어지는가?
보기 싫은 것을, 무서운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고, 안 보인다고
실제 사실이 없어지는가?
고뇌하는 존재가 있는 한, 그러한 ‘나’가 있는 한,
그러한 ‘나’보다 더 크고, ‘나’를 있게 한,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의 생의 나름 이유의 근원이 되는
더 근원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
최소한 고뇌하면서 고뇌가 주는 고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래도, 그래도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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