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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욥기묵상10] 나는 reactive 한 사람인가? Responsible 한 사람인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9:2)
Not react, but RESPONSE!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reactive 하는가? Reaction은 요즈음 예능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Reaction이 좋아야 프로그램은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reaction은 별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마음 없이, 소위 말해서 ‘영혼 없이’ 맞장구 치는 것을 말한다.
인간적 관점으로 반응하는 것을 reactive하다고 한다. 상대방의 표현에 대해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대꾸하고, 나의 관점에서만, 나의 생각으로만 반응하는 것은 ‘반응’은 되지만 ‘대안’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reactive 대신에 responsible 해야 한다.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참된 대안을 주어야 한다. 그 책임감, 참된 대안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서만 나온다.
인간은 죄인이고, 피조물의 한계를 가졌기에, 참된 대안, 근본적 대안을 줄 수 없다. 창조주 되시고, 죄의 문제를 십자가로 해결하신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욥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노력들에 대해서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15)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21)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25)
욥이 친구들과 신랄한 논쟁을 행할 수 있다.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나름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궁극적 해결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참된 대안 아닌, 일시적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은 실은 인간의 대안 찾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었기에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 그래서 역사는 지금도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다.
욥은 친구들로부터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다. 자신의 입장을 변호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궁극적으로 일시적 대안이 아닌, 궁극적 대안의 공급처인 하나님을 향한다. 이것이 욥의 신앙이 갖는 위대함이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6:10)
나는 reactive 한 사람인가? Responsible 한 사람인가?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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