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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욥기묵상11]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일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10:2)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면초가,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있다. 앞도, 뒤도, 옆도, 온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서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살면서 그럴 때가 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한다. 무기력과 좌절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어떤 방도를 구해도 빠져 나갈 길이 없다. 해결할 길이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는 헤어날 수 없는 자존감의 상실, 상처로 마음 전체가 피범벅이 된다. 누가 나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그냥 터져 버릴 것 같다. 나를 죽이든, 남을 죽이든 그 어느 한 쪽을 끝장 보이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 모든 것을 끝내 버리고 싶다…..
살면서 이런 때가 있다.
욥 또한 그러한 마음이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1)
그러나 욥은 이러한 최고의 곤란한 상황에 인간적 방법으로 끌려 다니지 않았다. 앞도, 뒤도, 옆도 막혔을 때, 좌절하지 않고, ‘위’를 보았다.
욥은 위를 보고, 위에 모든 것을 다 털어 놓고, 모든 감정, 모든 아픔, 모든 불평을 다 토로한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2)
왜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을 멸시하고 학대하시냐고 대들기도 한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3)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8)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기도 한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7)
하나님께서 과거 자신에게 잘 해 주신 것을 기억해 보시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12)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너무 극심하여 매우 견디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17)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18)
욥이 하나님께 아뢴 것.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 한다. 그의 기도는 고상한 톤과 절제된 표현, 형식에 잘 맞아 떨어지는 그런 정제된 것이 아니었다. 기도는 그런 형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실존의 한계와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절규의 토로, 간구였다. 이것이 솔직한 기도이다.
마치 술 취한 여인처럼 보이는 그런 한나의 기도를 말한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지경에서 드리는 무릎 꿇음, 그래서 그 기도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절규. 이것이 기도의 본색이다.
욥은 이러한 원색적, 본색적 기도를 이렇게 마지막으로 장식한다. 그 표현은 마치 ‘배 째십시오, 나 죽습니다!’라는 실존의 한계에 달한 절규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 하옵소서…’(21)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기도에 좀 응답해 달라는 말이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있는가? 외적 능력, 됨됨이 등은 차이가 없다. 더 나을 수도 있고, 덜 나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차일 따름이다. 그러나 극단적, 완전히 반대되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기도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이다. 사면초가의 상태가 되면, 비 신앙인은 자신의 힘으로 뚫고 나가려고 애를 쓰거나 포기한다. 용케 뚫고 나가면 자신이 높아져서 ‘교만’이라는 사면초가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때 사람은 자살을 택한다. 자살도 못하는 사람은 살아 있으나 살아있지 않고, 그냥 세상에 있게 된다(being but not living). 이런 사람은 죽고 싶어도 죽을 용기 조차 없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기도한다. 앞도 뒤도 옆도 다 막힐 때, ‘위’를 향한다. 기도는 용광로에 불순물을 집어 넣는 것과도 같다. 그 분은 어떤 하소연, 어떤 불만, 어떤 칭얼댐도 다 받으신다. 사람은 다 못 받아 준다. 그러나 그 분은 다 받아 주신다. 용광로와도 같다. 다 받아서, 모든 불순물은 다 태우신다. 깨끗함으로 우리에게 돌려 주신다. 더 빛나고, 더 단련된 모습으로.
앞도, 뒤도, 옆도 막힐 때… 더 이상 나갈 길이 없을 때(no way out)… 위를 보아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삶의 매 순간에 대해 가장 진솔하면서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에 의지할 때, 인간의 지혜에 의존했을 때 과연 인간 스스로 ‘길’을 발견하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가? 죄인 된 인간이 과연 바르게 살 수 있는가? 과연 인간의 역사(세속사)는 발전의 모습을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모든 길과 능력은 막혔고, 무능력함만을 보여 준다. 불의가 판을 치고, 교만이 득세하고, 이기와 개인주의가 도덕과 선행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인류’라는 마차는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 위에 고삐 풀린 말처럼,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수 많은 사고를 내면서 질주해 왔고, 이제 더 이상 제동하지 않으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위를 보는 일, 기도하는 일은 항상 행해야 한다.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기도해야 한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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