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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가복음묵상2] 우리는 매일, 첫 시간을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막 1:12-20)
[새벽-마가복음묵상2] 우리는 매일, 첫 시간을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막 1:12-20)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1:13)
광야!
그 곳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즐길 것도, 의지할 것도, 공급 받을 것도 없는 곳이다.
‘자기 자신 만’ 있는 곳이다.
‘단독자’로 있기에, 자아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질문을 던질 때, 답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광야는 우리가 거쳐 가야 할 필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광야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고, 인간의 강함이 전부가 아니고,
자아에 대해서 철저하게 연약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광야는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의지처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는 곳이다.
죄인 된 인간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철저하게 부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모든 것 위에 계시고, 그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된다.
진정성있는 부정은 참된 긍정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사십 일은 인간 한계의 상황을 의미하는 기간이다. 사람이 40일 동안 먹지 않으면 거의 죽게 된다. 40일은 그 한계선이다.
예수님은 그 광야에서 40일을 계셨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40일을 아무도 없는 광야에 계셨다.
어디나 계시는, 인간의 한계 가장 밑 자락에도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만 채움 받기 위해서…
성경은 예수님은 광야로 가셨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의미한다.
광야의 40일 이후 예수님은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움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오셔서 외치신 첫 마디가 ‘하나님의 나라’였다.
예수님 마음 속에 하나님만으로 채워 지셨기에, 그 채워지신 ‘내용’이
첫 마디로 터지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분의 눈빛은 하나님 나라 건설의 일념으로’만’ 가득 찼다.
그래서 어부들을 보시며 하나님 나라 건설의 일군인,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를 열망하셨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단 하나의 목적의식으로 집결되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그 분께서 사람을 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처럼 온전히 하나님 나라 선포로, 하나님 나라 건설의 역군들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되기 위해서 우리는 광야로 가야 한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은 광야에도 분명히 계신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만나게 된다. 하나님으로만 채움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첫 시간을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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