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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가복음묵상5] 제대로 가고 계시나요? (막 2:1-12)
[새벽-마가복음묵상5] 제대로 가고 계시나요? (막 2:1-12)
“도를 말씀하시더니…”(2:2) –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가?
본문은 한 중풍병자를 네 명의 친구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침 받았다는 유명한 내용이다. 이 본문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풍병 걸린 친구를 데리고 온 네 명의 ‘돈독한 우정’인가? 사람들이 너무 운집해 있어서 예수님께로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지붕을 뚫고 나아간 ‘열정’인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실 줄 믿는 ‘진정’인가?
그러나 본문의 시작은 병 고침이 아니라, 열정이 아니라, ‘도’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2)
여기서 표현된 ‘도’는 헬라어로 ‘말씀’을 의미하는 ‘로고스(ton logon)’를 번역한 표현이다. 한글 개역 개정판에는 이 ‘말씀’을 ‘도(道)’라고 한자어로 표현했다. RSV성경에서는 ‘the word’라고 표현되었다. 현대어 성경에는 ‘설교’라고 표현하였다.
모두 다 적절한 번역이지만, 한국인의 정서에는 한자어로 ‘도’라고 표현한 것이 우리의 정서에 무게감 있게 들리지 않을까 싶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은 바로 우리의 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때, 이렇게 개역 개정판처럼 ‘도’라고 표현해도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길!
길은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왜냐하면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주기에!
길은 더 많은 것을 보도록 한다. 그래서 변화와 발전을 갖게 된다.
길은 통하게 만든다. 그래서 연결시켜 더 많고, 귀한 관계로 이끈다.
그러나 길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선택’이다.
길은 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잘못된 길을 들어서게 되면 간만큼 손해난다.
우리는 매일 걷고 있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러나 중풍병자는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정 어린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우정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심중에 보시고 아셨던 진정한 신앙 또한 있었다.
중풍병자는 걷지 못했지만, 그래서 길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지만, 그는 진정으로 바른 길을 알았고,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중풍병자의 네 명의 친구들이 지붕까지 뚫고 간 그 열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께’로 갔다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즉, 예수님께로 마음을 향할 때, 길 되시는 예수님을 향할 때,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이미 영적인 길, 회생의 길, 치유의 길, 구원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예수님 자체가 길이시다. 그 분께로는 지체 장애자도, 어떤 연약자도,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도 갈 수 있다. 돈이 없어도, 과거 어떤 죄악을 저질렀어도, 삶이 너무 복잡해서 어떤 길을 갈 지 모르는 사람도, 연약해서 한 걸음도 내 디딜 수 없는 사람도 마음 ‘중심’으로 예수님을 향하면 예수님은 길이 되셔서 다가 오셔서 길이 되어 주시고, 길로 들어서게 해 주시고, 길을 갈 수 있도록 동행, 인도해 주신다. 그 분이 ‘길’이시기에!
중풍병자에게 병 낫는 것은 당면한 과제였다. 그러나 ‘병 낫는 것’을 추구하는 것과 ‘예수께로 나아오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실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것이다.
병 낫는 것이 목표가 되면, 그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은 병 나은 것으로 끝난다. 평생 예수를 따르고, 바른 길 가기 보다는, 진리의 문턱 앞에서 그 진리의 길로 들어서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근접인으로 중심부 주위에서 방황하고 빙빙 도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그 분은 진정한 ‘길’ 되시기에 그 분께로 나아갈 때 그 분은 참된 길을 제시해 주셨다. 육신의 병 치유 뿐만 아니라, 참된 영적 치유까지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는 영적 자유를 먼저 선포하시고,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11) 라고 육적 자유를 또한 선포하셨다.
그러나 어쩌면 교회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에 들어서기 바로 전 단계에 머무는, 근접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어떤 길을 가는가?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가? 아니면 ‘길’ 되시는 주님께로 나아가는가?
삶의 교차로를 지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늘 점검해 보아야 할 사안이다.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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