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가복음묵상8] 그대는 제대로 된 눈을 가졌는가? (막 3:21) (1)

by Pastor Bae posted Jan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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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21) – 그대는 제대로 눈을 가졌는가?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편견에 사로잡힌다.  편견은 자기가 보는 시각이 비뚤어졌기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되게 보는 것을 말한다.  사물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기 자신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긴다.  그리고 주장하고, 고집을 세운다.  이것이 작은 사안에 대해서 갖는 편견이면 그래도 괜찮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영적인 부분을 얘기할 편견을 갖게 되면 이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된다.  , 영적인 세계를 얘기하는 교회가, 영적 지도자들이, 신앙인들이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우리는 너무나 쉽게 편견, 혹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 자기 주관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서기관들이 파견되었다.  ?  예수 잡으려고.  예루살렘은 당시 종교청 본부가 있는 곳이다.   곳에는 대제사장, 수많은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 많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들은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자들이다.  바르게 세상을 보고, 세상을 이끌어 가야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 예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로 보였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 가시니 갈릴리에서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3:7-8)

 

당시로서는 천지 사방에서 예수께로 사람들이 구름떼 처럼 몰려 왔다라고 정도로 예수의 인기(?) 하늘을 찔렀다.  예루살렘 종교 본부 건물은 난리가 났다.  그들의 눈은 영적으로 뜨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인간적 눈만 번쩍 거렸다.  영적인 세계, 하나님 하는 자들이 실제로는 인간 냄새만 풍기는 것만큼 더러운 냄새는 없다.   부패한 냄새로, 썩어 진동하는 냄새로 사람들에게 나눠지게 된다.

 

그들은 억지를 부린다.  예수가 귀신 들리고, 미쳤다는 것이다(22).  그들은 이미 이성을 상실해 버렸다.  논리가 아닌 막가파의 논리를 펼친다.  막무가내다.  그들이 하는 말은 어린이라도 이해가 되는 말을 한다.

 

같은 편끼리 어떻게 좇아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 있느냐”(23).

 

분명히 예수님은 사탄이 아니다.  미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있는 얘기를 종교 기득권자들은 논리도 되는 억지 주장으로 예수님을 몰아 내려 하였다.

 

그들의 눈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비뚤어진 것이다.  자기 중심적, 이기적, 종교 전통주의적, 기득권 수호적, 인간적인 비뚤어진 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심각하고 문제는, 그들이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이다.  

 

영적인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잘못 바라보고, 걸어가는 세상을 향하여 바르게 지도해야 자들의 눈이 비뚤어지고, 못보고, 이끌어가는 모습들  그것을 스스로는 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통탄할 상황이다.  

 

과연 예수님 당시 뿐이겠는가?  이러한 영적 사시 현상은 오늘날에도 있지 않겠는가….

 

심각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기를 원한다.  

 

예수님의 친족들이 있었다(21).  여기서 친족들은 이어 나오는 뒤의 구절들을 예수님의 어머니, 동생들, 누이들이라 있다(32).  소위 말해서 직계 가족을 말하는 것임을 있다.

 

이들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살펴 이들은 소문이 아닌 찌라시 수준의 풍문, 부풀려 지거나, 왜곡된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종교 기득권자들이 퍼뜨려 놓은 예수님에 대한 대책없는 비방들, 왜곡된 내용들을 듣고, 직계 가족 조차 예수님에 대해서 인간적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아들, 우리 형님, 우리 오빠 미친 것이 아닌가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왔던 것이다.  가족이니까 이상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이상 사회에 자신의 가족, 자신의 아들, 자신의 , 자신의 오빠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된다는 단편적(?) 생각에 달려 와서 예수를 붙들러왔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안을 하나 점검해 보아야 한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인해 오히려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가족)들을 향해 우리는 편견의 시각을 가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자식이기에 오히려 쉽게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 자식(라고 생각하)기에 나의 이기적 사랑을 속에서 실현하고져 하는 의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자식을 영적으로 망치게 된다…. 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본문을 , 예수님의 직계 가족들은 분명히 영적 성숙의 대신에 편견과 자기 중심적인 영적 미성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족 또한 우리는 청지기적 자세로 대해야 한다.  가족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자녀는 실은 나의 자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부모에게 일정 기간 위탁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 만큼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신의 전부를 주는 사랑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를 어둡게 하고, 그것이 자식을 오히려 영적으로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성숙된 사랑 확인하는 방법은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 보면 안다 한다.  종교 지도자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사랑하는지자신의 직분을 빼앗기는 상황이 되어도, 하나님을 계속 사랑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들이다.  그러나 종교계 지도자 라는 자리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은 종교인이지 신앙인이 아니다.

 

크리스챤 부모도 마찬가지다.  부모이기 이전에 먼저 크리스챤이 자신의 진정한 아이덴티티여야 한다.  크리스챤이라는 정체성 보다 우선적인 정체성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신앙을 배운다.  그런데 부모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살펴 보려면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자식을 한번 빼앗아 보면 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지금 예수라는 자신의 맏아들을 미친 존재라는 상황으로 이끌려서, ‘빼앗길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들을 찾으러 달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달려 나오는 모습은 실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애, 자기 이기적 사랑의 발로였던 것이다.  자식은 사랑을 보고서는 온전한 사랑을 배우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리스챤 부모는 자식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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