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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누가복음 21] "사람을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 (눅 7:1-17)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7:13-14)
우리는
쉽게, 자주, 아니 어쩌면 ‘늘’ 자기 중심적인 생각, 대화, 관계 맺음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심(incarnation)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아닌, 타자의 관점과 마음과 상황을 보시는 ‘타자 중심적’ 관계맺음의
자세를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가지기
어려운 그런 마음 자세, 관계 맺음의 자세를 가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과부의 마음 깊은 곳을 보셨습니다. 죽은 아들은 독자였고, 청년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과부에게는 관계적, 사회적, 경제적 등 모든 측면에서 결코 견디기 힘든 아픔이요, 슬픔이었습니다.
그런
과부 여인의 깊은 속 마음, 과부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셨기에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주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아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그런 아픔’을 의미합니다. 과부
여인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과부 여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과부 여인의 영혼을 진정으로 위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아픈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 보려고 합니다.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갖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나 중심적으로
상대방을 보고, 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아픔을 같은 고통의 마음으로 느끼셨기에,
그 여인을 위한 참된 위로의 손길을 나누게 됩니다. 과부의 죽은 아들을 보시면서, 그 시체를 만져 주십니다(7:14). 그 만짐은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유대 계율을 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하나님의 계율을 지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시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그리고 손길하나까지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이 받을 수 있는 참된 위로의 온기로 사람들에게 다가 가셨습니다.
자신의
죽은 아들의 시체(당시 관은 베옷으로 싼 시체가 개방된 그런 관이었음)에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그 순간,
이 여인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자신의 아픔을 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따스한 손길, 참된 위로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의 아픔도 보시고,
같이 아파하시고, 만져 주십니다.
그렇게
위로받은 우리들도 주위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을 그렇게 참되게 위로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진정으로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 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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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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