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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9 20:33
[사순절-8일] 죄의 본질을 제대로 알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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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8일째
[죄의 본질을 제대로 알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묵상할 말씀] 눅 13:1-9
"…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3, 5)
[묵상]
신앙생활은 내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전통적 관념이나, 그동안 배워왔던 사회적 통념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나 중심에서 믿음의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즉 내가 아닌 절대적 존재, 즉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 나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뿐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죄’에 대해서 ‘본질적 의미’를 집요하게 추구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과거적 개념으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적, 하나님 중심적으로 죄에 대해서 접근할 것인가?
‘죄’라는 것은 사실 ‘벌’과 함께 연결되는 것이기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죄의 본질적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벌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벌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사람이 벌 받는다고 생각할 때,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갑자기 망대 같은 것이 넘어져서 거기에 깔려 죽는 상황을 보게 된다면, 사람들 의식 속에는 깔려 죽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저질러서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유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믿기에, 하나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망대에 사람을 깔려 죽도록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깔려 죽은 사람들이 뭔가 잘 못했기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의식의 깊은 곳에는 ‘깔려 죽은 사람들이 더 죄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비교 의식, 정죄 의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남들 모르는 밑바닥의 의식을 향하여 예수님은 뭘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 5). 예수님은 ‘아니라!’라고 아주 강하게 부정하십니다. 헬라어에서 이렇게 ‘아니라’를 따로 앞에 두고 표현한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부정의 표현입니다.
‘더 죄가 많은 죄인도 없고, 죄가 덜 있는 죄인도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죄의 본질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일반 범죄는 그 죄질에 따라서 경범죄도 있고, 중형에 처해야 할 죄질이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죄는 그런 사회적 의미의 죄를 뛰어 넘는 죄의 본질에 대한 얘기입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상황에서 인간이 스스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결코 없습니다. 절대적인, 완전하신,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너무 쉽게 보면서 하나님께 마음대로 다가갔다가, 내가 싫으면 다시 떠나오고…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동네 아저씨 정도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인간의 본질적 기초, 기본, 근본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방향이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기초가 완전히 다른 기초 위에 서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학으로 따지면 + 라는 상황에서 –라는 상황으로 바뀐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마이너스(-)는 방향 자체가 플러스(+)와 정반대이기에 마이너스 방향으로 더 노력하면 할 수록 더 마이너스가 됩니다. 덜 노력해도 여전히 마이너스 입니다. 마치 마이너스 1에 100을 곱해도 마이너스 100이고, 1만을 곱해도 마이너스 1만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죄란 이런 것입니다. 죄는 본질적 의미로는 더 큰 죄, 덜 심각한 죄가 없습니다. 죄는 인간이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 그 죄를 극복하지 못하는 영원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죄는 절대 무기력, 무능력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죄의 본질을 깨달을 때 우리는 최소한 두가지 자세를 갖게 됩니다.
첫째는,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노력하면 할 수록, 더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바벨탑은 아예 인간중심이라는 건물로 세워져 가기에, 그 바벨탑 안에서 열심히 살면 살수록 바베탑이 무너질 층은 점 점 더 해 질 따름입니다. 죄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능력 범위안에서는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믿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믿음은 내가 뭘 잘하는데, 더 잘하려고 갖게 되는 자세가 아닙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곧 무너질 모래 위에 쌓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토대 위가 아닌, 완전히 다른 토대로 삶의 근본을 옮기는 것, 다른 인간과 다른 절대적 능력을 가진 그 분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 이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죄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 최소한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세는 바로 믿음을 갖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출발이 됩니다.
둘째는, 죄 자체가 인간의 본질적 전적 무능임을 깨닫는 것임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 무능이고, 절대적 부패임을 깨달을 때, 나보다 더 나쁜 죄를 짓는 사람을 향하여 속으로 ‘그래도 나는 저 사람들 보다는 나아’라고 하지 않습니다. 수학 기호에 ‘무한대’의 표식이 있습니다. 이 ‘무한대’에 -1을 한 들, +1을 한들 ‘무한대’의 양은 전혀 변화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하나님을 떠난 본질적 죄의 의미, 즉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는 한, 더 나쁜 죄, 덜 나쁜 죄가 의미적으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참된 죄를 깨닫는 자는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의 죄가 구원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진실한 겸손’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세로 갖게 됩니다.
죄를 제대로, 본질적으로 깨닫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바로 ‘겸손함’입니다.
이 죄를 죄로 바르게 깨달았을 때, 그러한 죄인을 위해서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정당하게 죄 값을 하나님의 값으로 치루시고, 자신은 절대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그런 나를 구원해 주신 것!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값으로 계산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그저’ 받은 것, ‘그저’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표현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 받은 뒤에 제일 먼저 갖게 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죄를 철저하게 무능한 자아, 절대적 타락, 결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 임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철저한 타락 가운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갖게 되는 자세…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송구한 마음으로 가득찬 감사’입니다.
제가 ‘송구한’ 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감사자’의 마음이 결코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그 어떤 것도 드러낼 수 없는 그런 겸손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송구한’의 의미는 ‘마음에 두렵고 거북한 느낌’을 말합니다.
전적인 무능력을 죄의 본질로 인정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았을 때 갖게 되는 자세는 말 그대로 ‘송구함이 가득찬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원 받았다고, 자신을 높이면서 자랑한다거나(물론 좋은, 겸손한 의미로는 자랑할 수 있지만…), 구원 전의 철저한 죄의 무가치함과 무능력함을 잊어 버리고, 그냥 좋게만, 기쁘게만 살아간다면… 그것은 올바른 지식도 없고, 올바른 겸손도 없는 몰염치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죄를 죄로 깨닫고, 은혜로 구원 받았다면, 오직 ‘겸손한 감사자’ ‘송구한 감사자’의 모습만 있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참된 구원 받은 자의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 ‘겸손하고도 송구한 감사자’가 모인 교회에 과연 자랑, 교만, 시기, 질투, 경쟁, 투쟁 등이 있을까요? 그런 곳에 ‘직분 자리’ 놓고 경쟁함이 있을까요? 그런 교회들의 큰 모임인 교단의 총회장 선출을 놓고 과연 금권이 수억원씩 오가는 것이 정상적인 구원 받은 공동체의 모임일까요? 구원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교인들의 모임이라면, 과연 건물 놓고, 땅 놓고, 헌금 놓고 세속 재판정까지 가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처절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그러면서 자신을 스스로는 결코 구원 할 수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손길을 경험한 구원받은 신앙인이 삶의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할까요?
그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할 때…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과 두려운 상황이 된다 할찌라도… 죄를 극복케 해 주신 은혜의 하나님이 자신을 그 분의 강한 오른 팔로 붙잡아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가장 담대한 마음과 자세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때… 겸손과 감사로 오직 ‘은혜’ 앞으로만 나아가게 됩니다.
반대로…
이 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계속 죄악 가운데, 진흙탕 삶을 살게 됩니다.
문제는…
교회가 그 진흙탕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교회가, 성도가 죄를 본질적으로 모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죄를 본질적으로 모르니… 세상이 죄를 본질적으로 알겠습니까?!!!!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죄! 이 한 단어가 갖는 강력함과 깊이를 늘 깨어 있는 가운데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제대로 깨달은 증거는 ‘참된 겸손자’, ‘은혜만 의지하는 자’, 그리고 ‘송구한 감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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