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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14일째

[탕자의 비유입니까?  기다리는 아버지 비유입니까?]


[묵상할 말씀] 눅 15:11-24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묵상] 

본문을 보면서 ‘탕자의 비유’로 제목할 것인지, 아니면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로 할 것인에 대해서 조금은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쉽게 ‘탕자의 비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를 통해서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내 자녀가 언제 철이 들려나’ ‘내 자녀도 둘째 아들처럼 저렇게 철이 들어야 할텐데..’ 등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탕자의 비유를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는 것으로 그냥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비유는 구원과 관련된 비유이지만, 구원이 단순히 집나간 자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관점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를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거나, 신분의 획득 혹은 영원한 삶에로의 지위 보장 등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러한 신앙인이 갖고 있는 구원관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구원관이 되기 쉽고, 그 결과 구원에 대한 오도, 오해를 낳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구원을 부분적으로, 혹은 자기 중심적, 혹은 획득적 개념으로 이해하게 될 때, 그러한 토대 위에서 신앙생활하게 되면 10년, 20년 아니 평생을 신앙생활 해도 이기적 크리스챤, 물질과 외형에 얽매이는 크리스챤이 되기 쉽습니다.

그 결과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는 권사님들과 장로님들, 집사님들이 각자의 삶의 터전에 가서는 가장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쉽습니다.  그런 우스운 얘기가 있죠.  남대문 시작에서 물건 값 깎다가 다툼이 벌어 졌는데, 지나가는 다른 손님이 싸우는 두 분을 보면서 한 분을 향하여 ‘00권사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어쩐 일이세요?’라고 하자, 싸운 상대방 또한 속으로 ‘자신이 다른 교회 권사’라는 것이 밝혀 질까봐 찔끔했다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오늘의 비유를 ‘탕자의 비유’라고 붙이게 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구원에 대한 관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은 이 본문은 ‘탕자의 비유’라고 하기 보다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라고 함이 맞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에 대한 이해,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 그 근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둘째 아들이 갖고 있었던 기본 생각과 자세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는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 및 형과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외적, 법적 관계는 있었지만, 실제적 부자 관계, 형제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분깃 속에는 ‘관계’보다는 ‘소유’에 더 마음을 쏟는다는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분깃을 미리 받아, 타지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사용하다 돈을 다 써 버리고, 이제는 주려 죽는 상태가 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허비하게 된, 절대적 가난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가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실은 그에게 있어서 ‘관계’가 없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관계가 있으면 실은 마음의 위로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함께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없으면, 그것이 가장 가난한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쾌락 세상에서 만난 모든 관계는 실은 진정한 의미의 관계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관계라 할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에 기반된 관계, 이익에 기반된 관계였습니다.  그런 관계는 이 둘째 아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빼낼수 없다고 했을 때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주는 사람이 없게 되는 그런 관계입니다(16).

이제 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아들은 굶어 죽는 상황이 되어 돌아갔지만, 그래서 먹을 것을 바라고 돌아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멀리서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오신 아버지였습니다.

아시겠지만, 당시 아버지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재산의 분깃을 달라는 것은 ‘아버지보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상황을 볼 때 아들은 동네에서 돌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불효자를 엄하게 다스리는 유대인 풍습을 볼 때, 이 아들이 잘 못 돌아오면 돌맞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아들이 혹시 동네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할까봐, 돌맞을 까 봐, 자신의 창피(중동 지방에서 어른이 뛰어간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을 무릎쓰고 아들에게 달려가는 것은 오로지 아들 중심의 아버지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은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줌이었습니다.

아들은 ‘소유’ 개념으로 아버지를 대했지만, 아버지는 ‘관계’개념으로 아들을 대했습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가 회복하게 된 것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드디어 아버지와의 관계가 진정 삶의 의미와 능력임을 아들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철이 든 의미입니다.

--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의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원래는 ‘존재적 개념’으로 삶을 이해하였는데, 이제는 ‘소유적 개념’으로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관점에서, ‘나는 당신의 사랑을 갖게 되었다’라고 관점이 소유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비극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적 개념으로 갖기에, 그 안에 참된 부유함이 없습니다.  이기적, 계산적 관계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익이 안 보이면 금방 배신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신앙마저도 소유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천국 티켓을 소유한 것으로, 물질적 복을 받는 기반으로, 원하는 것이 들어 지게 되는 대상자로 구원과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구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간 것은 아버지의 재산에로 돌아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참된 회복을 갖게 된 것입니다.

--

이 시대가 물질 중심, 개인 중심의 시대이기에 신앙마저도 ‘소유’ 개념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했다면… 그렇게 하고 있다면… 아직 철들지 않은 ‘여전한’ 탕자입니다.  아무리 집나갔다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탕자’입니다.  그가 바로 첫째 아들, ‘집안의 탕자’였습니다.

구원의 본질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즉 관계의 회복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소유 중심으로 어릴 때부터 자라왔고, 교회마저도 그런 개념을 많이 가르쳐 왔기에, 참된 신앙의 본질을 갖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 예배, 묵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 예배의 기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기쁘다는 존재 중심, 관계 중심의 신앙을 매일 매일 조금씩 더 생활화 하고, 기쁨을 맛볼 때, 우리는 참된 구원의 맛, 본질을 이해하고, 맛보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본문은 분명히 ‘탕자의 비유’가 아니라, ‘기다리시고, 반겨주시는 아버지 비유’입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나는 신앙을,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 봅시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구원임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깊게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제(동행)하는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한 수직적 관계가 회복 될 때, 수평적 관계, 즉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나 중심적 관계에서, 진정한 인격적 관계로 회복될 것입니다.  관계의 회복(수직 & 수평)!  조금은 크지만, 오늘의 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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