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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5 00:23
[사순절-21일] 자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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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21일째 (03/04/금/2016)
[자유하십니까?]
[묵상할 말씀] 눅 18:15-30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7)
[묵상]
신앙을 갖는 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나의 삶을 좀 더 나은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건가요? 더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집을 갖게 되고, 더 착한 사람이 되고,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만약 이러한 삶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실은 신앙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위의 의미를 신앙생활이라고 한다면, ‘아주 신앙생활을 잘 한 사람’으로 여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 청년은 대부분의 십계명을 잘 지킨, 매우 모범적인 신앙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을 향하여 정곡을 찌르십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가 무엇을 행하고, 어떻게 행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점입니다.
신앙은 나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가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게 되면, 실은 ‘내가 만든 하나님’ ‘나를 높이고 칭송하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하나님’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이러한 자세는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정곡을 찌르십니다. 무엇을 사용하여? 이 청년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장점을 사용하여…
이 청년은 ‘큰 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23). 이 청년의 자랑이요, 장점은 그가 ‘큰’ 부자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물질이라는 장점이 실은 하나님을 못 믿게 만드는 ‘약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장점, 강점이 실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데 장애와 약점이 되기 쉽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은 자기의 정체성을 심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가 다른 계명을 다 지켜도, 그 계명을 지키는 내면 깊숙한 속에는 ‘자기’라는 자아중심적 자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있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완전히 내려 놓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 앞에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하나님과 대치 관계에 놓고 지낸다면, 엄청난 착각이거나, 신 앞에 반항하는 것이거나, 자기의 존재를 정확하게 모르는 불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의 외적 신앙 행동은 결코 신앙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자기 자랑, 자기 높임, 자기 영광, 자기 자립의 모습이 계명을 잘 지키는 모습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이 청년은 ‘심히 근심’하게 됩니다. 그에게 삶의 출발이요, 의미요, 존재의의는 바로 ‘물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장점이 그의 아킬레스 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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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나름의 아킬레스 건이 있습니다. 나의 강력한 장점이 실은 참된, 바른 신앙을 갖게 하는데 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나름의 아킬레스 건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삭개오처럼 그러한 자신을 얽매게 하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질의 노예였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토색한 것의 4배를 갚아 주고,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의 거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돌려 주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에게 그를 얽매게 만들었던 물질이 더 이상 자신의 섬길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삭개오나 본문의 부자 청년처럼 물질이 자신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학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외모가, 어떤 사람에게는 집안의 배경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기가…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하나님 아닌 인생의 주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이 그럴 수 있고, 목회자들에게는 교회의 외적 성장이나 사람들의 칭송이 그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엄밀하게, 냉철하게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종교적 열정과 충성과 헌신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을 때, 내가 그것을 선뜻 결단하지 못하게 된다면… 실은 나는 바른, 참된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부자 청년의 근심,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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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청년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까요? 만약 저에게 물으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눌 수 있는 금액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그러나 이 큰 부자 청년에게는 물질이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 정체성은 자기의 힘으로는 결코 놓아지거나, 변경되지 않습니다.
그 붙잡고 놓치 않으려고 하게 되는 그 정체성(청년에게는 물질)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정체성의 토대가 되는 것 보다 더 큰 존재, 더 강하고, 더 생명력있는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이 될 때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스스로 물질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에게 물질보다 하나님이 더 크실 때, 하나님이 살아계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 주인이 되실 때… 오직 그 때만 그는 기쁘게 물질을 포기하게 됩니다. 물질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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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오늘 나온 어린아이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철저하게 자기가 부족한 자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웁니다. 그래서 안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떼를 씁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린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자기 부정, 자기 부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동시에 부모님께 철저하게 안깁니다. 부모가 자신에게는 전부입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해 줍니다. 어린아이가 행해야 할 유일한 길은 부모만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을 힘써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기도 응답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살았더니 세상이 줄 수 없는 창조적 인사이트, 지혜, 풍성함,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평안 등을 받게 되는 길… 이 길 외에는 부자 청년이 자신의 물질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신처럼 떠 받드는 물질보다 더 큰 존재가 나타나지 않고서는 자신의 전부가 되는 것을 자신의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큰 존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부자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물질나눔’에 눈길을 주지 말고, ‘하나님 알기’에 온 힘을 쏟는 것입니다. 이 길만이 유일하게 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길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알기 위해서 성경 연구, 말씀 묵상, 순종, 배움, 신앙공동체 생활, 안식 등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알기위해 최대의 노력을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주님을 알기 위해 힘을 쏟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내 인생의 참 하나님이 되십니다. 가장 중요한 분이 가장 중요한 분으로 내 인생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다른 영역들은 중심의 자리, 주인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나에게 그 자유가 있습니까? 물질로부터, 지위로부터, 명예로부터, 칭찬으로부터, 자존심으로부터… 세상의 그 어떤 좋은 피조물의 영역으로부터…. 나는 자유하십니까?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십니까?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나에게 자유의 두가지 구체적 모습이 있습니까?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 ‘~를 향한(위한) 자유(freedom for)’가 있습니까?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자유하십니까? 자유함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을 위해서 나눌 수 있는, 섬길 수 있는 자유함이 있으십니까? 오늘의 적용은 그 자유함을 맘껏 누리고, 맘껏 사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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