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26일] 권위를 상실한 시대! .... 권위를 상실한 교회? 목사? 성도?

by AAHC posted Ma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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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26일째 (03/10/목/2016)

[권위를 상실한 시대!... 권위를 상실한 교회?  성도?] 


[묵상할 말씀] 눅 20:1-8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8)


[묵상]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릅니다.  권위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권위를 갖는 것이고, 권위는 남이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권위주의는 사회와 집단에 병과 어려움을 주는 것이고, 권위는 사회와 집단에 질서와 존중 및 존경심을 부여해 줌으로 생명력과 애착을 갖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세상의 사람들에게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를 갖고 있을까요?  권위는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향해서 평가해 주는 것을 말할 때…. 세상은 교회와 성도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숫자가 많을 때 자칫 다수의 횡포를 부릴 수 있습니다.  지위가 높을 때 지위와 권력으로 횡포를 부릴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국 교회가 다수의 횡포, 권력의 횡포를 부리고 있지 않을까요?  그 ‘다수’와 ‘권력’은 ‘허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권위주의로 인한 모든 것은 허수이기에, 금방, 쉽게 물거품이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권위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를 누군가 위협했을 때, 방어적 자세를 갖는 것은 참된 권위가 아닌, 외적 권위, 직분적 권위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리더쉽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신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을 향하여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섭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2).

권위는 진리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말씀(진리)이셨고, 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1).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즉, 삶에서 진리의 열매를 보여 주는 것이죠.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진리의 사람은 담대히, 당당히, 머뭇거리지 않고, 정직하게, 바르게 답변합니다.  진리의 사람은 진실하기에, 권위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4) 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지 못합니다.  만약 나에게 이 질문을 물어 보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당연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동일하게 죄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가 행했던 세례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즉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답변을 담대하게 합니다.  바르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권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과 영광에 기초하였기에 가장 쉬운 질문조차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권위주의자들은 결코 권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

이런 질문과 답변을 나누신 뒤 예수님은 가장 절정의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

이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권위주의로 달려 드는 자들에게는 아무리 참된 의미의 권위를 설명해 주어도 실은 잘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권주의자들에게,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차 있는 자들에게 말씀은 이제 좀 더 찔러 쪼개는, 단순한 꾸지람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을 하지 않으심으로’ 말씀하십니다.

훌륭한 연설가는 연설 도중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짐으로 자신의 연설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더 강력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단순히 수사학적 기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표현 속에는 더 강력한 가르침, 즉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보여 주심은 ‘돌(예수님을 가르침)이 사람 위에 떨어지게 되는(즉 심판을 의미)’(18) 마지막 무서운 심판을 말씀하심을 우리는 본문 전체를 보면서 알 수 있습니다(이 말씀 직후에 예수님께서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작하시니라’(9)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은 다음 비유가 바로 지금 대화하고 있는 내용에 연결되는 것임을 말씀하심).

이러한 전체적 맥락을 볼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너무나 단호하고, 결연하고, 무서우리만치 강력한 경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러한 권위주의로 인해 복음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권위주의가 아닌 참된 권위를 가짐으로써 복음전파를 방해하거나, 가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도가 복음을 가리워 버리면 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8)로 하심은 어쩌면 ‘나는 더이상 너희에게 소망을 두지 않겠다… 그만 포기하겠다…(물론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해서… 섬뜩하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혹시, 이 말씀을 동일하게 권위주의를 표방하거나, 그렇게 표방하기 쉬운 교회 목사라는 직분을 갖고 있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싶어서…

--

잘못된 권위주의적 자세는 참으로 냉정하게, 냉철하게 돌아 보아야 할 영역이라 봅니다.
또한, 잘못된 권위주의로 복음을 가리고 있지 않나를 또한 냉정하게, 냉철하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심각하게 교회와 성도는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참된) 권위를 가져야 할 교회와 성도가 권위대신 권위주의로 자신을 감싸고 있다면…
이 시대, 이 사회 (참된) 권위를 상실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이 질문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이 질문에 대해서 감정적 화가 난다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

권위를 상실한 시대를 보며 한없이 불안해 지는 새벽입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나는 진리(하나님께 대하여), 진실(자신에게 대하여), 진심(남들에게 대하여)의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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