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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영적 순례 40일 / 30일째 (03/15/화/2016)

 

[일상, 하나님의 나라 - 종말론 및 종말을 대하는 올바른 시각 및 자세]

 

 

[묵상할 말씀] 눅 21:5-19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12, 17)

 

 

[묵상]

 

학교에서 치루는 시험에 대해서 대개 부담을 갖습니다.  시험(test)을 좋아 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시험 문제를 미리 다 알려 주고, 답도 다 알려 주고, 답을 내가 다 외우고 있다면 시험을 대하는 자세는 어떨까요?  기다리고, 기대의 마음으로 시험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시험이 더 이상 시험(temptation)이 아니고, 나의 능력을 입증하게 해 주는 ‘복된’ ‘좋은’ 과정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은 종말에 관한 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징조들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징조의 갖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다들 관심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평소 보거나 체험하지 못하는 그런 기괴한 징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혹, 전쟁, 자연 재난, 박해 등 등의 온갖 종류의 어려움들이 일어나는 때가 바로 재림의 때, 종말의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우리가 이 성경 본문들을 보면서 배워왔고, 갖게 되는 관점들은 이러한 종말적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배워 왔습니다.  미혹되지 말아야 하고(8),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9), 박해시 인간의 관점으로 대하지 말아야 하며(14), 심지어는 가족관계가 어려울 때에도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19)는 등의 종말때 가져야 할 자세를 많이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시각만을 갖는 것이 성경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까요?  종말의 현상이 이러 이러하니까,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이러 이러한 자세로 제대로 맞이할 준비를 하라… 는 등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성경을 일반 도서 코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활의 지침서’ 정도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침이 아무리 좋아도, 그 속에 정당한 근거, 참된 지침의 능력, 그 능력의 원천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실은 ‘지침은 지침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늘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성경으로 볼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생명력을 우리에게 줍니다.

 

--

 

오늘 본문, 즉 종말의 현상과 대처하는 자세로 알려진 본문의 출발은 무엇입니까?  출발을 알 때, 그 뒤의 과정에 대한 이유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5).  바로 성전에 대해서 나누면서 얘기는 시작됩니다. 

 

성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영광의 예배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소개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신약에서 교회로 발전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조직이 아니고, 성도의 모임이며,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러한 성전/교회의 본질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본질은 사라진채 껍데기만 왕성하고, 껍데기가 오히려 본질을 소개하는 것처럼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요?  본질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본질을 붙잡도록 하기 위해서 껍데기는 없애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온 주님의 대답이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6).  이는 성전에 대한 저주의 말이 아닙니다.  이는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주님의 애정의 표현입니다.  성전/교회가 회복되어야 세상이 바르게 됩니다. 즉, 이러한 주님의 성전 정화 표현과 행동은 세상을 향한 주님의 애틋한, 지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의 행동이 과격하면 과격할 수록 실은 세상을 향한 더 깊고 진한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고, 세워져야 할 것이 세워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서 바르게 머리 역할을 하시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시험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되며, 언제 시험을 치루게 되더라도 자신감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시험을 치루게 됩니다.  물론 성적도 좋습니다.  다 답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본문을 유심히 보면 ‘내 이름으로’ 혹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이 세 군데 중요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혹을 받을 때도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분명히 미혹을 담대하게 이기게 됩니다.  진짜 진품을 갖고 있는 사람앞에, 가짜 짝퉁 상품을 가져와서 자기 것이 진짜고, 최고이고… 이렇게 떠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금방 탄로납니다.  진짜는 진짜의 진수를 맛보고 있고, 진짜가 주는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 있기에 가짜가 주는 일시적, 부분적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짜를 가짜로 더 빨리, 완전히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미혹될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상황은 더 재미있습니다.  ‘박해받고, 회당과 옥에 넘겨 짐을 받게 되고,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려 가게 되는 상황’을 맞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힘들고, 어렵고, 두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라고.  즉 주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먼저 삶의 전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실 때, 주님이 주가 되실 때 그 삶은 어떤 삶일까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께서 진정으로 교회와 성도의 머리가 되실 때 그런 교회와 성도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주님을 거역하거나, 주님의 보혈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상황과 그룹에 대해서 진리를 선포할 것입니다.  진리를 제대로 아는 자는, 진리의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받는 박해는 실은 당연한 것입니다.  실은 그런 박해를 안 받는 것이 이상한 것이죠?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거나, 아니면 세상의 모든 죄악이 없어졌거나… 세상의 모든 죄악이 없어질 리가 없기에, 실은 신앙인이 세상에서 박해를 안 받는다면 그것은 신앙에 대한 자기 점검을 정확하게 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제대로 신앙을 갖고 있는 자는 오히려 박해로 인해 자신 속에 있는 신앙이 점검됩니다.  확인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박해가 올 수록 더 강해 집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울 수록 더 둘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집니다.  진짜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13).  주님의 말씀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

 

그런데 아마도 핍박 중에서 가장 큰 핍박은 가족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일 것입니다(16).  내 몸이 상하는 것도 힘들지만, 실은 가장 큰 힘든 일은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18절에 나타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는 표현은 단순히 외적, 육체적 온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12절에 감옥 가는 것 등으로 다 감당되었을 상황입니다. 

 

머리털 하나라도 라는 말은 나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게 될 괴로움, 고통, 상처, 아픔, 곤고함 등까지도 하나님은 보호, 인도, 치유, 회복 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고통을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부활로 인도함 받게 되실 때 육체의 상처 치유 뿐만 아니라, 참된 구원, 영원한 구원, 참된 부활로 인한 온전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평소에 영적 교통과 체험을 한 사람들은 이 소망을 현재적으로 미리 체험하기에 어떻게 할까요?  네!  ‘인내하게 됩니다.’(19).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언적으로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19). 너무나 복되고 귀한 감사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말의 모든 어려운 상황을 맞이 한다는 것이 아니고, 또 종말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이겨 내는가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교회가 그 본질적 입장을 갖는 것입니다. 

 

성전의 핵심인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가 형식과 겉치장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질 때, 교회는 어떤 자연적 재난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죄악의 세상과 대면/대항하기에 고난과 핍박을 더 받게 됩니다.  즉 핍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진실한 신앙의 증표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핍박과 고난이 와도, 자신 속에 주(Lord)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내하게 되는 것 자체가 바로 참된 기쁨이요, 소망이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말세가 어떻고, 그 말세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참된 성전, 참된, 교회, 참된 성도’의 삶이 핵심입니다.  ‘성도의 가슴 속 중심자리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한, 상황에 이끌려 가는 삶이 아니라, 상황을 이끌어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

 

이제 진짜 결론적 묵상을 나눠야 합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성전의 본질을 잃어 버린 ‘형식 성전’때문에 발단한 것입니다.  헤롯 왕이 80여년에 걸쳐 지은 외형만 웅장한 성전은 본질 대신 형식만 가득찼습니다.

 

그 성전이 초창기에도 그랬나요?  아닙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처음 짓고 봉헌할 때의 감격과 신앙적 자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감격, 감사, 겸손, 신앙으로 완전히 충만했던 성전이었습니다.  당시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신앙으로 가득찬 감격의 외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과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화려해 진 성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어느 새 하나님은 사라져 버린 상황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작은 하나님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한 인도함, 공급, 충만 등을 경험하게 되자, 어느 새 간절함과 의지함의 대상인 하나님께로 향하는 눈길은 좋은 결과로 인해 기쁘고, 풍족함을 누리게 된 자신과 환경으로 눈길이 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리고, 상황과 여건만, 환경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성전은(껍데기만 있는) 빨리 무너져야 합니다.  무너지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무너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본질을 추구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본질을 계속 붙잡고 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 입니다.  ‘주님의 이름만을 끝까지 붙잡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하고, 중간에도 그렇게 해야 하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그렇게 해야 하고, 나쁘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그렇게 해야 하고… 오직 ‘그 이름’ ‘주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교회와 성도의 머리가 되셔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런 자에게 말세, 종말의 어떤 무서운 징조가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마치 시험공부 다 해서 답을 다 외우고 있는 학생에게 시험은 피하고 싶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빨리 맞이하고 싶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고, 증거로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처럼…

 

준비된 신앙인에게 종말과 말세는 적극적으로 기다려 지는 가장 가슴뛰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최선과 감사와 영광의 기대로 살아갑니다.  참된 신앙인은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적용] 사순절 기간 동안, 진리에 의한 가장 왕성한 섬김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

 

* 관계적 신앙!  관계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상황의 어려움/쉬움에도 연연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주’(Lord)로 섬기고, 순종하고, 따릅니다.  한 두번의 착한 삶도 중요한 적용이 되겠지만, ‘언제나’ ‘항상’ ‘시간이 흘러도’ 주님을 ‘주’로 계속, ‘그 이름 때문에’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  실은 이러한 삶이 가장 중요한 적용사안입니다. 

 

관계가 있으면 ‘행함으로 가장 먼저, 가장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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