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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2 03:10
[새벽 묵상-레위기/10] “나답과 아비후는 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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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2) – “나답과 아비후는 왜 죽었을까?”
레위기 10장을 읽을 때 항상 의문시 되는 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그렇게까지 죽을 짓(?)을 했는가?’이다. 물론 제사직분은 중요한 직분이고, 바르게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불 간수를 잘 못 한 것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다. 이 사건 바로 다음에 아론을 향하여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9)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보아서 나답과 아비후가 독주를 마시고, 취한 상황에서 불 관리를 잘 못 한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해 봐야 할 것은 ‘불 간수 혹은 관리’를 잘 못 했다고, ‘술 마신 것’이 그렇게까지 ‘죽을 만한 일’인가 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냉혹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답과 아비후라는 자신의 두 아들이 죽은 직후 아론이 보여 주는 자세 또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잠잠하였다’(3)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세가 자신의 형 아론과 자신의 조카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자신들의 두 형들이 죽은 것을 본)을 향하여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6)고 경고의 표현까지 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다. 자신의 생때같은 자식을 한꺼번에 둘이나 잃은 아론이 잠잠한 것이나, 형들을 잃은 동생들을 향하여 ‘슬퍼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은 너무 냉정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지독하게 냉철하게, 냉정하게, 냉혹하게 여겨지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는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묵상을 진지하게 하는 자세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3) 하셨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져 하신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것은 어느 만큼 중요한 것인가?
이는 나답과 아비후를 죽여서라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아론이 자신의 아들 죽음을 보면서도 잠잠해야 할 것,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자신들의 형들의 죽음 앞에서도 슬퍼 하지 말아야 할… 세상의 그 어떤 중요한 것과 최대의 슬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라는 최대한의 역설적 표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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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혹시 우리가 너무 ‘인본적으로’ 성경을 읽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은 ‘생명의 끝’이기에 ‘전부’를 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육체적) 죽음’이 ‘전부’인가? 아니다! 아들의 죽음이 전부인가? 형들의 죽음이 전부인가? 아니다!
슬픔은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한 것이 인간에게는 진정으로 '전부'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모든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전부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제사직분을 처음으로 감당하는 아론의 가문에, 제사장의 가문에 정확하게 알려 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욥은 자식 10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러나 그 자식보다 더 중요한, 아니 자식과 비교할 수 없는 창조주, 광대한 하나님께서 욥에게 임한 모든 슬픔의 배경뒤에 계셨다. 자식들은 자신의 눈 앞에 없어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 욥과 함께 하신 것이다.
욥이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욥의 눈이 비로소 뜨여진 것이다! 욥이 그 전까지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눈이 뜨여졌을 때, 욥은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때가 진정으로 그의 심령이 열리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기를 원하셨다.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들이다. 이 시대,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사람들에게 예배의 영광, 예배의 거룩을 보여주고, 선포해야 할 자들이다. 그 거룩과 영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목숨과도 바꿀 만큼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성도는 살아내어야 하고,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목숨과도 바꿀 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임재는 예배를 통해 나타나고,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임하신다.
참된 예배가 없다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없고… 결국은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예배의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중함'을 하나님께서는 가르쳐 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진정한 예배자인가?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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