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우리의 편지라…”(3:2) – “신뢰(信賴)는 신뢰(神賴)가 될 때 참된 신뢰(信賴)가 이룩된다”
삶에서 ‘신뢰관계’만큼 행복하고, 능력 있고, 기쁜 모습이 없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의심받고, 사도권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여러분 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2, 새번역)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믿음과 신뢰의 마음을 보여 주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어떤 변명이나, 다른 권면의 표현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 자체들’이 바로 바울의 가슴 속에 있었던 사랑과 사역의 대상임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 자체를 신뢰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2, 새번역)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바로 진심의 것임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읽을 만큼 바울은 투명하게, 자신감 있게,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모든 사람 앞에 공표할 수 있음을 표현한다.
이렇게 상대방을 믿고, 믿어 주고, 또 자신의 마음을 모든 사람 앞에서 다 공표할 수 있을 만큼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러한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쁠까?
나는 바울의 이러한 표현을 보면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의 하나라 생각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전부를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드렸고, 바쳤기에 참된 추천장이 필요한 상황에서 바울은 다른 글로 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을 다해서 드렸던 바로 그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자신을 위해서 천거해 주는 추천장’이라고 자신 있게 표현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자신감을 보면서 참으로 바울은 행복한 사역자라고 생각 되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 당당함, 담대함, 진솔함, 진실함… 이러한 관계적 자세가 있을 때, 사역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거나, 오해가 있어도, 또 능력이 안되거나, 부족함을 많이 느낄 때도… 계속 순수함으로 섬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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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능력의 사역 자세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3, 새번역)
바울의 가슴 속에 있게 된 담대함과 당당함, 그러면서도 겸손한과 순수함은 실은 바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만약 바울 자신에게서 나왔다면 그렇게 완전하거나, 강력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마음,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자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역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바울 자신과 동역자들은 그런 사역의 도구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하는 모든 근본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다고 말한다.
정말로 탁월한 인간 관계법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 빚 보증 서다가 어려워 진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보면서,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그 관계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의리가 있는 관계라도 그 관계가 완벽한 것일까?
인간 사회사와 역사를 볼 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인간은 한계가 있고, 연약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여러분을 만들고, 이끌고, 함께 하시는 분은 바로 ‘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를 제가 믿기에, 저는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역사하시는 그 마음이 진정한 것, 진실한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만’ 신뢰했다. 그 결과, 그는 사역을 인간적으로 하지 않았고, 인간의 사역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역의 도구로 자신도 드렸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행하게 되었다.
신뢰의 한자는 信賴라고 쓴다. 사람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한계가 있다.
바울이 이 한자를 사용했다면 그는 이렇게 썼을 것 같다. 神賴라고… 즉,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진정한 ‘신뢰’를 이룩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사역을 하다 보면 사람의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난감, 곤혹 스러울 때가 많다. 사람을 더 이상 못 믿게 될 때가 있고, 그러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 늘 걱정이나 두려움이 앞설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을 보는 나 자신은 스스로 믿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실수도 많고, 잘못도 많고, 한계도 많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 때문에 더 곤혹스럽게, 다 당혹스럽게 할 때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옆도, 뒤도 보지 말아야 한다. 사역자는 오직 위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神賴해야 한다. 그럴 때만 사람을 信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고후 3:1-18 (다음 묵상 / 고후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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