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말씀/하박국 1]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1:2, 3) – “질문하고 있는가?”
“어느 때까지리이까… 어찌하여…”(1:2, 3) – “질문하고 있는가?” 예스맨은 쉬운 사람이지만, 맞는 사람은 아니다. 역사 속에, 사회 속에 ‘예스맨’으로 있을 때, 당장은 평안한 것 같지만, 실은 역사를 망가 뜨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스맨이 아니었다. 그는 타락하고 부패한 자기 조국, 유대민족의 죄악상, 타락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항거했다. 하나님께 질문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2)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2)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3) 질문하는 것은 반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다. 답을 찾는 것은 더 나은 단계로의 발판이 된다. 조금 껄끄럽더라도, 진정한 발전을 위한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답은 분명히 있다. 하나님은 모든 정답을 갖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과감히, 늘, 깊게, 세밀하게 질문해야 한다. 그럴 때 답을 얻게 되고, 그 답을 얻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답 없이 나아가면 참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하박국 선지자의 통절한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답을 갖고 계신다. 악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실 것을 말씀하신다. 악은 반드시 멸망하고 만다. 하나님께 이러한 질문을 행하고, 답을 얻은 자 만이, 심판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소망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심판이 끝이 아니라, 그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봄으로, 참된 진리, 참된 소망, 참된 정의,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질문 하는 자만이 답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자만이 정답을 얻게 된다. 질문하고, 답을 얻는 자만이, 모든 상황 끝에서 비로소 새롭게 시작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