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2:14) – “언제까지 질문해야 하는가?” 하박국은 질문의 책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서로 변론(reason together)하자고 하신다. 반항이 아닌, 반론이 아닌, 대화와 대담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 소통의 관계, 발전의 관계이다. 불통은 자신감의 결여에서 나온다. 불통은 신뢰의 결여에서 나온다. 소통은 곧 관계의 통로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악한 유대를 그냥 내 버려 주십니까? 왜 바벨론이라는 악한 나라를 들어서 유대를 치십니까?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정확한 답을 들었을 때, 비로소 하박국은 가슴의 시원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라”(14). 그리고 그 마지막 시원함의 표현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겸손한 자세로 맺는다.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20) 질문은 왜 해야 할까? 과정없는 결론은 맹목적, 막무가내 식은 맹신적 신앙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믿는, 맹신적 신앙을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과정은 소중하다. 그래야 결과 또한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갖게 된다. 그러면 질문을 어디까지 해야 할까? 바로 하박국이 시원한 가슴을 안고, 표현한 그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고백이 나올 때까지이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을 내가 고백하는 그 순간까지! 성도는 이 정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해야 한다. 성도는 세상이 이 정답을 고백할 때까지, 세상으로 하여금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선지자적 자세이다. 오답이 많은 세상에, 답을 찾으려는 과정을 무시하는 세상에, 정답을 못 찾아 갈증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에… 성도는 시원한 해답, 유일한 정답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정답을 향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을 계속 던지는 자들이다. 성도가 질문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