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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2:15) – “교회 안에서 남녀 역할 및 그 구분의 문제”

(* 내용이 조금 깁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실 때 읽으시기를 부탁 드리며... 교회나 소그룹에서 한번 토론의 제안서로 사용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 ^)

오늘 본문은 처음 읽으면서 매우 거북스러울 수 밖에 없는 표현이 몇 몇 나오는데, 읽으면서 솔직히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예가 이런 구절들입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11)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 할지니라”(12)

이러한 구절들을 대하게 되면…여성들이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장으로서 여성들도 많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 성경이 너무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갖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구절을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사용하면서 여성을 억압하는데 사용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또 수많은 여성들이 이 구절들을 사용하면서 성경의 부당성으로 인해 신앙 생활하기가 어렵겠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러나 찬찬히 성경을 바르게 들여다 보는 과정을 갖는다면, 이 구절들로 인해 오히려 더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장 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본문은 기본적으로 디모데라는 목회자에게 준, 교회 및 성도님들을 섬기는 현장에 주어진 본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이 구절은 신앙이 없는 분들이 아니라, 죄와 은혜,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 공의와 인자의 의미를 붙잡고, 십자가의 은혜로 인해 구원 받은, 은혜를 아는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은혜는 죄를 인정한 사람만이 깨닫고, 체험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를 인정하는 자들은 이 본문을 남을 억압하고, 핍박하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이 표현들을 남성 우월자들이 자신들의 우월을 실현하는데 이 구절들은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는 도구로, 교회 안에서 남성도들이 여성도들을 억누르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전혀 맞지 않는 적용이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는 이러한 가이드 라인과 강한 어조의 꾸지람을 ‘겸손하게’ 받습니다. 자신의 출발이 죄인이었고, 그 죄를 은혜로 대속해 주신 것을 기억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강한 명령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자존심으로 세우는 차원에서 받지 않습니다.

물론 신앙인도 자존심이 앞서거나, 감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자신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강한 명령에 대해서 자신의 자아만을 앞세우는 그런 옛 사람의 모습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본문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신앙인은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구원이 가능하지 않았던 죄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이러한 명령에 대해서 그 의미와 의도, 이유 및 목적 등을 돌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가 은혜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의 기본 자세입니다.

둘째, 성경의 모든 명령을 전시대적인, 보편적인 명령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명령과 원리는 전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적인, 본질적인, 원리적인 명령과 원리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명령은 시대를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의 의미, 하나님 사랑을 예배를 통해 드리는 그 의미 등은 모든 신앙인이 지켜야 할 명령이고 보편적 원리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한 명령은 당시 초대 교회 시대가 갖고 있었던 상황적 명령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 시대 때 여성들은 매우 천시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투표권도 없었고, 거의 물건 취급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여성들이 오히려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치중하였고, 또 구원을 받는데 사회적 신분이나 성적 차별이 없이 구원을 받았기에, 그 억압되었던 상황에서 구원의 자유를 얻었던 여성들이 어떤 경우는 지나친 감격의 표현, 그래서 도가 지나친 행동이나 앞에 나서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분량을 뛰어 넘는 지나친 행동을 공동체 안에서 행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억압받았던 시대였기에, 성화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초신자들, 특히 여성도들에게서 이러한 도를 넘는 행동들이 더 많았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바울은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9) 고 한 것이고, 또한 ‘조용하며’(11), ‘가르치는 것 혹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지’하였던 것입니다(12).

마치 고린도 교회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사용함으로 교회 덕과 질서에 문제를 일으켰을 때 바울 사도가 자제하도록 권했던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적 말씀의 내용을 현대 상황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입니다. 문자적으로, 절대적으로 모든 시대, 모든 여성들이 다 잠잠해야 하고,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직분을 맡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자칫, 하나님의 본질적 남녀에 대한 관점을 남성 위주의 모습으로,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모습을 바울은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보편 질서 원리 위에서 엄중한 균형, 절제, 질서의 모습을 초대 교회에 요구합니다. 그래야 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분명 초대 교회와 상황이 다릅니다. 시대적으로 여성들이 초대 교회 시대 처럼 억압받는 그런 상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일과 직무 등의 면에서도 현대 여성들은 남성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의 역량을 발휘하는 상황입니다.

바울이 현대 교회를 향하여 동일한 원리로 말씀한다면 어쩌면 다른 관점들을 많이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어, 계약직의 문제, 지나친 물질 주의의 문제, 외형주의의 문제, 유교적 교회 직분 개념, 교회마저 성공을 세속적으로 생각하는 문제, 난민들에 대한 교회와 국가의 자세 문제, 교회의 참된 영적 생명력의 문제 등 등… 이 부분은 우리가 깊게 묵상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함께 나누고, 구체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들입니다. 이것이 본문을 바르게 관찰하고, 해석한 뒤, 바르게 적용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셋째, 본질적, 통시적, 근본적 원리는 이러한 모든 분별과 판단과 결정에 매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초대 교회라는 상황 아래서 생긴 여성들의 지나친 문제들을 대하면서 아담과 하와의 상황을 원리적으로 적용해서 그 해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13)라는 말과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다’(14)라는 구절은 연이어 표현되었습니다. 이 말은 이 두 구절이 창조적 질서의 상황을 표현한 구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두 구절은 하나의 의미를 설명하는 구절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먼저, 아담이 먼저고, 하와가 나중에 지음 받았다는 말은 남녀 우열을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돕는 베필’이라는 표현과 결코 맞지 않습니다. ‘베필’이라는 말은 한 쌍이라는 말인데, 한 쌍에는 결코 우열이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완전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둘 다 동등하게 중요합니다.

동등하게 중요한데, 무슨 우열이 있습니까? 아담이 먼저이고, 하와가 나중에 지음 받았다는 것은 그저 ‘창조적 질서가 말하는 남녀의 순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남녀에게는 본질적, 본성적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좀 더 이끌어 가는 성향이 있고, 여성은 돕고 후원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앞에서, 한 사람이 뒤에서 서로 당기고, 밀어 줄 때 바르게, 강하게 나아갑니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본성의 차이가 있음 또한 알아야 합니다. 특히 여성은 듣는 것에 약한 본성이 있습니다. 하와가 뱀의 말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데, 하와는 뱀의 달콤한 속삭임(하나님과 같이 되어…)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 본성적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본질적, 본성적 약함을 여성들의 당시 사회적 상황에 적용하여 지금 현대 사회에서 볼 때는 지나칠 만큼 강력한 제어적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여성의 본성적, 본질적 측면을 이해했을 때는 이러한 명령이 지나치다기 보다는 가장 적절한 명령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같이 적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본성적, 본질적 적용의 원리를 진정으로 본질적으로 적용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현대 여성들은 무엇에 약할까요? 실은 이 부분은 묵상과 분별력이 짧은 제가 함부로 말할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여성 성도들이 진지하게 말씀의 원리를 놓고, 함께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현대 여성 성도들이 약한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정결하게 만들고, 순수하고 거룩하게 하는데 적절한 가이드 라인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남성들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현대 남성 성도들로서 구원과 은혜를 깨닫고, 창조적 질서를 기초로 한 상태에서 현대 남성들이 정립해야 할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또한 제가 함부로 말하기 보다는… 성도님들이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 함께 나눈 원리들을 토대로 한번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마지막 표현인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공동번역-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번역)’(15)의 의미라 생각합니다. 하와는 범죄의 결과 해산의 고통을 벌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벌받음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구원 받아야 합니다. 해산의 고통을 극복하고, 자녀를 잘 낳아 잘 기르는 극복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즉, 구원의 멋진 능력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성 성도로서 지나친 모습이 있었다면, 다시 구원의 본질, 은혜의 본질, 창조의 질서 위에서 돌아보고, 성숙과 덕의 차원의 구체적인 모습을 함께 기도하며 구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범죄의 벌인 ‘해산’의 고통을 극복하고 아기를 잘 낳아 잘 기르는… ‘구원의 현재 진행형적’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남성에게는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노동의 고통’이 극복되고, 일의 현장, 직업의 현장, 노동의 현장이 기쁨과 감사, 최선과 충성, 그리고 격려와 가치의 현장으로 극복 승화되는 모습이 될 것이라 봅니다.

이렇게 살펴 볼 때…
본문은 여성 비하, 여성 억압, 여성 제어의 구절이라기 보다는… 여성도를 향한 성숙과 자유함, 그리고 구원의 엄청난 능력과 감격에로 이끄는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묵상을 제대로 한다면, 동일한 묵상과 적용을 남성들도 같이 해야 하리라 봅니다. 그것이 첫 구절인 8절의 의미라 봅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매일 성경 묵상: 딤전 2:8-15 / 다음: 3:1-7)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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