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행함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by AAHC posted Aug 03,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행함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여름이다. 잠시 하던 일들을 멈추고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갖는 시기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해 지기 쉽고,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데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신앙인은 '행함으로 구원얻는' 율법주의적 관점을 갖는 자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삶의 변화나 성숙이 없는' 그런 맹신주의적 자세를 갖는 자들을 말하지 않는다.

바른 행함의 삶을 이 여름에 갖고 싶다. 
나태해지지 말고, 또 잘못된 행함의 삶으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기 위해서
바른 신앙적 관점의 '행함'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나 자신을 위해서 정리한 글임을 밝혀 둔다.
긴 글, 두서없는 글임을 밝혀 둔다... ^ ^

1. 신앙인의 모든 행동의 시작은 '은혜'로 시작되어야 한다. 늘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오해이다. 죄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거에는 동일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 '죄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적인 죄인, 하나님의 원수된 나 자신을 전지전능하신 신께서 자신의 값으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신' 사 주신(구속) 그 은혜를 나 자신의 정체성의 출발로 늘 되새겨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가 나의 존재요, 출발임을!

2. 나의 공로가 전혀 없는 것이기에 신앙인은 '겸손과 감사'가 가장 중요한 반응(response)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신앙인의 정체성이다. 감사는 신앙인의 가장 우선적인 반응이다.

켄 데이비스는 이를 Nothing to Hide / Nothing to Prove / Nothing to Lose 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감사와 겸손, 그 자체가 바로 신앙인의 행함의 가장 기본이다. 감사와 겸손이 없는 행함은 신앙인이 아닌 자의 행함이다.

3.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신앙인의 행함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니, 절대적이다. 성령의 열매는 철저히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의롭게 된' 자만이 행하게 되는 당위적 결과이다.

성령의 열매 자체가 구원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다. 희락(카라)는 은혜(카리스)에서만 온다. 화평(에이레네)는 구원이라는 제 값을 치룬 후만 나타나는 것이다.

오래참음은 사명과 소명을 끝까지 다하는 자의 자세를 말한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자비(크리스토테스)는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친절(발을 씻겨 주심)에서 비롯된다. 양선은 나의 선행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대속으로 의롭게 된 자만이 갖는 겸손한 담대함, 철저한 자원 청지기의 모습을 말한다. 자신의 의가 전혀 없는, 철저한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자세를 말한다.

충성(faithfulness)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faith)에서 나온다. 온유(플라리스)는 단순한 겸양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강력함이 성령의 절제와 함께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적절한 행동양식과 자세를 말한다.

4. 성경의 전반적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결코 팔복산 위에만 있지 않다. 마태복음 8장 1절은 예수께서 산을 내려 오심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마태 22장).

십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미쉬파트(정의)는 체다카(공의)와 함께 표현될 때가 많다. 이 두가지 단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정의이지만, 그 정의는 이웃과의 관계 회복까지 가야 함을 말한다(이사야서, 아모스서).

즉, 교회 안에서만 신앙인이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주일에만 신앙인이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성경을 반 밖에 모르는 자이다. 99퍼센트 진짜 같은 돈이 가짜 돈이듯이, 신앙인에게서 교회 안에서만, 주일에만 신앙의 개념과 적용이 있다면 그는 어쩌면 성경을 모르는 자일 지도 모른다.

성경은 삶의 현장(here and now)의 신앙을 말한다.

5. 일반은총의 영역 또한 은총의 영역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일반은총만으로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은총만을 중요시 여기는 자세는 이 세상에서 영지주의적 자세를 현대에 갖게 되기 쉽다.

기독교인들이 상식과 논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고, 불로소득이나 일확천금은 성경적이지 않다. 늘 상식적인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논리와 함께 초논리의 영역도 있음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논리'만', 혹은 '초논리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질서 위에서 창조하신 '논리적'이신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6. 역사 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한국 교회의 현대적 당혹스러움은 실은 20년 전, 30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역사를 비판적 시각으로 늘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한계적으로 역사를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냉철한 자기검증의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10년 후, 20년 후 지금 보다 훨씬 더 사회로 부터 냉혹한 천대를 받는 입장을 갖게 될 것이다.

신사참배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하듯이,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비성경적인 표현, 
유기체적 신앙 공동체를 추구해야 하는 교회가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외적 숫자놀음으로 성장의 기준을 두는 모습, 
선지서는 일년에 한번도 읽지 않고, 
복음서만 목회서신만 읽는 다면, 
정교분리의 자세를 오히려 반기독교 세계관, 사회 분리주의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행했다면,
이웃 교회와의 관계를 공동체적으로 보지 않고, 경쟁적으로만 본다면,
논쟁을 함에 있어서 자기 개인주관의 주장만을 앞세우고, 논리의 비약도 서슴없이 행하는 무논리/반논리의 모습을 가장 의로운 신학적 자세라고 행하게 된다면...
.......

역사의식이 없는 기독교인은 역사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7. 순수해야 함을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현대는 죄가 너무 많은 세상이다.
성적 유혹이 많고, 물량 공세, 외형 공세, 비교 의식, 쾌락적 요소가 너무나 발달된 세상이다.

스스로의 힘으로은 이 죄악된 세상에서 순수하게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타협해서도, 죄악과의 동침을 당연히 해서도 안된다
마약을 쉽게 용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그 영역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 소명, 일용할 양식'의 영역을 넘을 때 '마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마약은 한번 대하면, 접하게 되면, 그 다음은 나를 장악하고, 정복한다. 내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고, 얽매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쾌락, 물질, 명예의 욕심으로부터는 벗어나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철저해야 한다. 한번 마약 접함은 평생 나를 노예로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순수함'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으나, 실은 '가장 역동적인 삶'을 말한다. 죄악이 너무나 과도한 시대이기에, 옹달샘이 아무리 작아도 그 존재는 너무나 강력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온 삶으로 '순수함'을 추구해야 한다.

맺으면서...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창조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cultivate 는 그냥 멍 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하고, 손과 발을 사용하고, 머리와 가슴을 사용하는 전인적, 전행위적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능성(potential)을 너무나 많이 우리에게 주셨다. 개발하지 않는다면 우리만 손해이다. 성도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삶의 방향을 갖는 이 세상에서, 바른 방향을 향하여 그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부지런하게.

이 세상에서 정말로, 가장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자들이 크리스챤임을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본다.

열심히 살자!
아니, 바르게 열심히 살자!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