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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역대상3] “성전/교회의 본질적 정신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성전/교회의 본질적 정신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역대상 22:1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은 그 자체가 성전이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임한 곳이었고, 하나님과 교제가 충만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곳이었기에, 그 곳에 기쁨과 행복과 사랑이 넘쳤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영광을 함께 누린 복된 곳이었다. 그 곳은 지성소였다. 타락하고 범죄하여 죄성이 가득한 인간 사회 속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없었다. 전쟁과 미움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속적 가치관으로 세상은 왜곡, 괴물이 되어 버렸다. 성전이 필요했다. 하나님과만의 만남이 필요했다. 성막이 없으면 사람은 더 이상 길도 보지 못하고, 소망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 성막을 만들어 주셨다. 홍수로 다 죽어가는 세상에 방주를 주셨듯이, 하나님은 광야에 길과 생수를 주셨다. 그것이 성막이다. 이 성막은 그 본질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라는 제약적 요소로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은 약속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해 진다. 그러기 위해서 한 민족과 지파가 필요했다. 그 계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온전한 죄값을 치루고, 온전한 거룩으로 인도함 받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사함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구약의 사람들은 수천번, 수만번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 제사의 본질은 자칫 잊어 버리기 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가면 더 그 본질을 잊기 쉽다. 다윗은 성전의 본질적 목적이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고 그는 성전의 본질적 목적에 부합한 최대한의 정성과 준비를 행한다.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도 풍성한 준비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이렇게 세대가 바뀌고, 외적 물질이 풍성한 상황에서도 성전 본래의 목적,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대가 지나면 잊기 쉽다. 외적 자원이 풍성하면 우리의 눈은 외형으로 많이 가게 된다. 그러나 성전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지성소적 만남이다. 그 본질이 본질로 지켜져야 한다.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질을 왜곡한 헤롯 성전을 향하여 무너 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3일 만에 다시 세우신다고 하신다. 성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통한 지성소적 삶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솔로몬을 위해서 많은 준비와 재료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가 솔로몬에게 전한 가장 중요한 말은 ‘마음과 뜻을 바쳐서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임을 강조하였다. 여호와가 없는 성전, 지성소가 없는 성전. 어쩌면 오늘날의 교회들이 그런 껍데기만 있는 건물(외형) 및 조직만 짓고 있지 않을까…. 예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한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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