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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5] “사역 승리는 이미 시작 전에 결정된다”
“사역 승리는 이미 시작 전에 결정된다”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3:22) 성도의 삶 자체는 사명과 소명의 삶, 즉 사역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성도를 불러 가실 때는 사역기간이 다 했기에 불러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매일, 매 순간의 삶을 사역의 삶으로 대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이 땅에 존재케 하시고, 생명을 주신 것이다. 에스겔 또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다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이 될 때 선지자의 소명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시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대신에 선포하며 나아가는 직분을 부여 하신다(17). 그 직분은 매우 엄중하고, 무섭기까지 한 것이다.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게을리 하거나 감당하지 않으면 에스겔이 그 대가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18). 자신이 선포했는데 백성들이 듣지 않으면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는 정말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사명이다(19). 이러한 사역에는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매국노라고 오해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이사야처럼 제단 숯불로 자신의 입술을 지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에스겔은 자신의 아내가 죽게 되는 엄청나게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기 까지 한다(물론 육신의 죽음이 영원한 절대적인 죽음이 아님을 우리는 인정해야 함). 다니엘은 사자굴에까지 가게 되는 상황도 맞이하였다. 결코 사역자의 현장은 쉽지 않다. 그만큼 세상은 죄와 악으로 가득 찼고, 불법과 세속적 가치관으로 가득 찼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사탄의 발악 또한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탄의 존재가 발악하는 영향력은 거짓의 가면을 쓰고, 온갖 속임수를 동원하며, 일시적 쾌락을 영원한 형벌과 바꾸도록 그렇게 기묘한 술책을 동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메피스토펠레스의 꼬임에 넘어가 팔아 넘겨 버린 파우스트처럼 그렇게 자신의 삶과 영혼을 악마의 유혹과 꼬임에 팔아 버린다(괴테의 ‘파우스트’). 이것이 사역자가 가야 할 현장이다. 사역자의 현장은 결코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엄청나게 험한 사역 현장으로 에스겔을 가라고 하신다. 단! 그렇게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몇 차례 반복, 강조적으로 성경에 나타난다. 먼저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두렵고 떨림(overwhelmed)이라는 혼합된 마음으로 칠일을 지낸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분노의 마음(14)과 조국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근심의 마음(14)이 함께 하는 그런 혼합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7일 동안 에스겔은 어떻게 지냈을까? 단순히 복잡한 마음과 생각만 했을까? 성경은 7일 후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가서 해야 할 일을 명령하심을 보여 준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6-17). 에스겔은 자신의 어려운 마음, 분함, 근심 등을 칠 일 동안 하나님께 다 아뢰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기도의 가장 솔직하고 진정한 모습이다. 기도는 남들 보기에 거룩하고, 보기 좋게,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솔직하고, 어려운 마음을 그대로 다 아뢰는 것이다. 분명히 에스겔은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하나님께 다 아뢰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제서야 ‘가서 해야 할 구체적 사명’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구체적 사명을 주시면서 금방 보내시지 않으신다. 좀 더 단단한 채비를 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22). 들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광야와 같은 곳이다. 그 곳은 길도 없고, 사람도 없다. 즉, 하나님과’만’ 있는 곳이다. 하나님과’만’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왜? 사명지의 사명 보다 중요한 것은 사명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명지는 그렇게 혼자서 기고만장하게 갈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기에… 그 들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체험한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세상의 쓰레기 같은 영광을 하찮게 여기고, 유혹도 이기고, 공격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에스겔을 향한 채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24).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누구만 있을까? 에스겔과 단 한 분, 어디나 계시는 하나님 뿐이다. 그만큼 사역자는 사역 현장으로 가기 전에 하나님과만의 시간을 철저하게 가져야 한다. 왜? 사역의 성공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라”(26)…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27).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도 철저하게 훈련시키신다. 자신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만 하도록 하게 하신다. 왜? 그래야 사탄을, 세속주의를 이기기 때문이다.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없다. 하나님 외에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역 현장으로 가기 전에 에스겔로 하여금 7일 동안, 들판에서, 문이 닫힌 집안에서, 그리고 선포할 말의 영역도 다 꽁꽁 하나님과만의 시간으로 묶어 버리신다. 에스겔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 대신에,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만 의지하는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래야 사역 현장에서 진정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으로 이끌 모세는 언제 이미 능력을 갖게 되었는가? 불에 타고 있지만 타지 않는 떨기 나무(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이미 능력을 갖게 되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실제로 어디서 이미 결판이 났는가? 아론과 훌이 모세와 함께 드리는 그 기도 자리에서 결판이 났다. 골고다의 승리는 어디서 이미 결판이 났는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간절한 기도의 자리에서 이미 결판이 났다. 사역자의 사명 감당은 어디서 이미 결판이 나는가? 사역 현장으로 가기 전에 하나님과의 대면의 시간(기도)때 이미 결판이 난다. 사역 승리의 원동력은 사역자가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역의 승리는 이미 사역 전에 결정 난다. 바로 하나님과만 독대하고, 하나님과만의 시간을 갖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기도의 자리에서!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3:16-27)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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