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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8] “우리는 왜 범죄하고, 하나님은 왜 심판하시는가?”
“우리는 왜 범죄하고, 하나님은 왜 심판하시는가?”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6:7)
이 두가지 질문은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 두 질문의 내용을 살펴 보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는 표현을 빌어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raise questions, therefore I am).’
그렇다. 질문하는 것은 답이 있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영원한 영생의 삶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올바른 답을 갖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 분께 질문할 때, 삶의 참된 의미, 그리고 참된 실제적 해결책을 받게 된다. 즉,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실존을 다 만족하는 삶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표현은 본질과 실존에 충실한 인간 존재의 참된 모습을 갖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성도는 늘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하나님을 향해서 던져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올바른 답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던져야 할 질문들 중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질문이 위의 두가지 질문이다. ‘우리는 왜 범죄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왜 심판하시는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질문을 왜 하나님께 던져야 하는가? 그것은 (범)죄의 정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남(하마르티아)’이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왜 우리는 죄짓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답이 없다. 그리고 나와도 틀린 답이 나오기 쉽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없이, 단순히 사회적 기준에 어긋나게 잘 못한 것을 죄라고 정의하고,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을 인간의 의지적 노력, 도덕적 노력, 다수의 의견에 따른 기준 등으로 죄에 대한 정의와 해결을 해 보았자, 참된 치유, 참된 회복, 참된 영생의 삶을 누리지 못하기에 죄에 대한 바른 본질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죄 문제는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고, 그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 죄 해결의 본질적 이해요, 출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기에, 죄인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심판 하심 또한 당연하다. 다른 사람이나 내가 심판해서도 안되고, 심판이 없어서도 안된다. 인간은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질서와 정의의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그냥 내버려두고, 심판을 안 하시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선지서는 포로로 끌려 가는 상황에서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해방되고 회복할 수 있을까’ 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답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답이 되신다. 그래서 에스겔서에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라는 표현이 무려 54회나 등장한다. 이 표현을 약간 변형한 표현까지 합하면(18회) 무려 72회나 등장한다. 에스겔서를 읽을 때 이 ‘내가 여호와 인 줄 알리라’는 표현이 나올 때 더 유의해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바르게 이해할 때, 인간의 범죄함에 대한 해결책과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하시고져 하는 이유 또한 알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도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표현이 4회 등장한다. 1-7절까지는 산당을 없애라는 하나님의 책망과 함께 영적으로 오염된 제단과 분향단을 깨뜨려 버릴 것을 말씀하신다. 산당은 가나안 들어가기 전부터 가나안에 있었던 장소이다. 이는 이방신을 위한 제단이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전을 지은 상황이 되어도 이스라엘 왕들은 대부분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 이는 혼합주의적 자세를 말한다. 산당은 이방신을 위한 곳이기에, 인간의 종교심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일반 종교는 인간의 염원과 욕심과 의지적 발동에 의해 만들어진 인본주의적, 세속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당을 없애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산당이 아직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유일신 사상, 참된 여호와를 향한 신앙이 종교화 되어 감을 의미한다. 일반인들이 종교적 행동을 하는 것은 인간 본성적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가 기복주의적 모습을 갖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 형식과 체면에 의한 예배 행위는 종교적 모습이고, 이는 산당종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산당은 없애야 한다. 이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앙인의 본질적 신앙적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은 없다. 결코. 두번째 등장하는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0절)는 ‘살아 남은 자가 있게 하시는’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만이 약속하시고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분이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세번째 등장하는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3절)는 전염병, 칼, 기근 등을 보내셔서 완전히 죽음으로 이끄시는 심판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인간이 행한 범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죽음을 인간에게 선고한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때, 사람은 함부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그 무서움을 알아야 죄에 대해서 진지한 자세를 갖게 된다. 네번째 등장하는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4절)는 ‘광야에서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광야에서 디블라는 이스라엘 전체 지역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전 우주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 인간은 왜 죄를 짓는가? 역사 이래로 범죄의 기록만큼 다양하고 많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질문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본질적 질문이기에 답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반드시 답을 알아야 한다. 왜 신은 심판하는가? 심판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질문 또한 우리는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심판을 면할 것이 아닌가… 이 두가지 질문의 답은 무엇인가? 단 하나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제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죄와 심판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가?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6:1-14)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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