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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20]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자아 인식을 바르게 할 때 가능합니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자아 인식을 바르게 할 때 가능합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16:6)
목회를 하면서 실제 삶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가 ‘건강하지 못한 자아상’을 가진 경우일 때가 많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삶의 많은 문제는 관계영역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많은 관계 관련된 문제는 ‘자아정체성’과 관련한 경우가 많다. ‘어른 아이’같은 모습도 있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경우도 있고, 분노조절 장애의 경우도 있고, 자기만의 틀 안에 갇혀 사는 유아론(solipsism)의 모습도 있다. 반대로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학교에서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가문과 부모의 뒷받침 등이 약해도, 외적 기반이 좋지 못해도 사회적으로 매우 건강하게,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성숙한, 역동적인, 생명과 섬김의 삶으로 우리 개인의 삶을 이끈다. 그들이 속한 단체나 사회는 매우 건강한 사회가 된다. 그래서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지식 교육보다 이 사회가 건강하고, 제대로 발전하는데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건강한 자기 정체성은 어떻게 갖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것일까? 단순히 어릴 때 트라우마를 다시 기억하고, 그 원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나 환경적 요인으로 다시 이해해서 자기를 받아 들이고, 내적 치유를 행하는 것으로 온전한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성경은 다르게 접근한다. 성경은 인간의 출발을 ‘죄성을 가진 죄인’으로 정립하고, 선포한다. 이를 에스겔 16장에서는 ‘여아로 태어나서 버림받은 아기’에 비유한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에는 남아 선호 사상이 있었다. 그래서 여아로 태어나면 탯줄도 자르지 않고 들판으로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4). 얼마나 불쌍한가? 얼마나 위태로운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출발임을 성경은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아기가 태어났는데 탯줄도 제대로 자르지 않고, 물로 씻지도 않고, 강보에 싸지도 않고, 그냥 들짐승이 많은 벌판에 버린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얘기지만, 범죄, 죄성의 무서움을 정직하게 우리는 알고,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상황은 그렇게 괴롭고, 아프고, 힘든 것이다. 이 처절한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나 자신과 다른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왜냐하면 그들도 동일하게 처절하게 버림받은 아기들과 같은 존재이기에) 오직 영아를 건사하고, 돕고, 인도할 ‘어른’(여기서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된다. 여기서 신앙의 이유가 시작된다. 동일한 처절한, 연약한 인간을 의지하는 것은 도덕이다. 윤리이다. 사회 규범이다. 사회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선행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다 영아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적인 이해를 정직하게 함으로서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자아 정체성을 우리에게 갖도록 한다. 그런데 그 피투성이 아기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6).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본능적인 사랑이 느껴졌다. 인간은 처절하게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또한 너무나 간절하게 사랑받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겸손과 감사, 이 두가지가 나의 자아 형성의 기본이 될 때, 가장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술 더 떠서 인간을 향하여 사랑을 보여 주신다. 피투성이고 알몸인 우리를 위해서 맹세하고 언약을 베푸시며 좋은 옷, 화려한 장식 등을 공급해 주신다. 자라도록 하시고, 성숙한 우리를 향해서 왕후의 지위에 올리시는 것이다(13). 구원은 단순한 상태의 변화, 전환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부럽고 아름다운 지위인 왕후의 지위를 향해서 새롭게 출발하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것이 구원의 참된 의미인 것이다. 이런 자아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갖게 되는 자아상은 어떤 것일까? 겸손이고, 감사이고, 기대감이고, 담대함이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사랑에 늘 기쁨과 감격에 차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성공 지향적 삶’ ‘성취 중심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자아를 보여 준다. 그 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있고, 그 속에 겸손함과 함께 담대함이 있다. 그 속에 과거적 만족 뿐만 아니라 미래적 기대 또한 함께 있다. 이런 자아상을 가질 때 참된,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죄로부터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왕자 & 공주)가 된 성도가 참된 자기 이해를 했을 때, 성도는 분명히, 반드시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도… 성도의 모임인 오늘날의 교회가 문제가 많고, 분쟁이 많고, 이기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갖는다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에스겔서 16장은 구약의 복음서이다. 이 복음의 본질로 나아감으로 다시 한번 더 참된,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갖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16:1-14)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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