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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25] “영적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해야 할 3가지”
“영적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해야 할 3가지”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18:4) 물론 3가지 이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서, 최소한 이 세가지는 영적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서 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된다. 물론 육적 자녀들을 대하면서도 이 세가지는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육적 자녀가 영적 자녀로 자라지 못한다면 그 보다 더 큰 슬픔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내 몸을 타고 난 자녀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가져야 할 가장 최고의 우선순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세가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이 세가지는 본문을 통해서 내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임을 밝혀 둔다. 첫째는,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실은 진리이고 가장 중요한) 말씀 교육을 철저히 행해야 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2)라는 속담은 결코 맞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의 신앙으로 자녀가 구원받지 못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며, 이삭의 하나님이며,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이삭이 자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다. 야곱이 자신의 할아버지(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다. 구원은 결코 물려 주지 못한다. 단, 말씀은 물려 줄 수 있다. 그래서 신앙의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 실제로 많이 느끼는 것은 ‘성도님들의 많은 경우가 복음을 제대로 모르거나’ ‘오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개독교’가 될 이유가 없다. 복음, 즉 말씀(진리)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며, 겸손의 자세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장로님 대통령이 나오셔서 행한 통치 모습을 보면서 ‘복음’의 흔적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대통령직 보다 복음이 그렇게 열등한 것인가? (소수) 대형교회가 사회법과 상식을 따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복음을 아는가 라고 묻고 싶다. 실제로 현실의 수많은 신앙인들이 진정 신앙의 본질, 복음의 본질을 아는지는… 솔직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교회는 사이즈에 관계없이 성도 한 명 한 명의 신앙의 본질적 이해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자녀 한 명 한 명을 부모가 다 개별적으로 대하듯이, 교회는 1/n로 대해서는 안된다. 잃은 양이 100마리 중의 한 마리이든, 1백만 마리 중의 1마리이든 그 한 영혼을 위해서 끝까지 찾고 찾아야 한다. 자녀를 어떻게 1/n로 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영적, 육적) 자녀에 대한 올바른 부모의 자세이다. 찾고 확인해야 할 핵심은 ‘자녀가 복음을 아는가’ 이다. 복음(말씀)을 제대로 알면, 말씀이 자녀를 이끌어 줄 것이다. 둘째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부모의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부모가 완전, 완벽하게 되라는 말이 아니다. 말씀, 즉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구원의 근원 되시는 주님만을 계속 의지, 따르는 삶을 말한다. 본문에서 3회에 걸쳐서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정황들을 말하고 있다(5-9, 10-13, 14-18). 그 내용들은 정의와 공의, 우상 제물 규례, 성적인 생활 규례, 관계 규례 등 삶의 모든 영역을 거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내용을 3회 동안 거의 동일하게 반복하다시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삶의 현장, 생활을 통해서 부모의 삶으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의미이다. 자녀는 부모의 입술로 교육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 말이 아닌, 몸과 삶으로 배우는 것이다. 부모는 먼저 자신이 주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삶의 자세를 가짐으로 자녀를 몸과 삶으로 교육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다(고전 11:1). 완벽한 자신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하기에 그리스도를 늘 따르고, 의지하는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부모의 자세이다. ‘제자되어, 제자삼자!’는 표어는 내가 섬기는 교회의 표어이다. 이 표어를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고, 교회 목회 사역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어의 참된 핵심은 ‘제자 삼는 것’에 있지 않다. ‘내가 먼저 제자가 되는 것’에 있다. 진심으로, 진실로 제자가 되는 사람(현재 진행형)은 주님의 마음으로 채움 받기에 영혼이 보이고,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된다. 비로소 자신의 자녀를 주님의 제자로 삼게 되는 것이다. 즉, 자녀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목표로 하고, 헌신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자녀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야 말로 부모로서 가장 안심되고, 기쁘게 될 것이다. 왜? 부모 자신이 아니라, 자녀가 따르는 주님께서 자녀의 앞 길, 평생을 인도, 보호, 동행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본문에는 직접 나오지 않지만)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부모가 되어 본 사람만 안다. 본문은 매우 냉정하게 부모 자녀 관계를 설명한다. 부모가 구원 받았다고, 자녀가 구원 받지 못한다고 냉정하게 말한다(1-4). 부모는 자신의 신앙으로 구원받고,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5-9). 그런데 그의 자녀가 신앙으로 살지 못하면 그 자녀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강하게, 냉정하게 말한다(10-13).
또 부모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자녀는 신앙을 제대로 알고, 신앙적 삶을 산다면 부모는 죽고 자녀는 산다고 성경은 말한다(14-18). 이 본문을 부모가 된 사람, 또 부모를 생각하는 자녀의 입장으로 읽게 된다면… 결코 기도하지 않고서는 읽지 못한다고 본다. 피를 나눈 자녀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피를 받은 부모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이 구절들을 맨 눈으로 읽을 수 있을까? 복음과 구원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 자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자녀, 자신의 부모가 아직 그 우주 최고의 가치인 복음과 구원을 이해 못하고, 받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냥 맨 정신, 맨 눈으로 이 본문을 읽을 수가 없다. 이 본문에는 ‘기도’라는 구절이 적혀 있지는 않지만, 반드시 읽혀져야 하는 표현으로 담겨져 있다. 그래서 세번째 부모(혹은 자녀)로서 해야 할 자세(혹은 행동)는 ‘기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새벽기도회 시간 중 개인 기도가 시작할 때, 거의 반사적으로 제일 먼저 나오는 기도가 ‘자녀를 위한 기도’인 경우가 많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귀하게 여기신다고 믿는다. 하나님도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심정을 아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부모로서 가슴 저리며 드리는 자녀를 위한, 향한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라고 나는 믿는다.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의 삶을 보여주고, 기도하는 이 세가지는 영적 & 육적 부모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중요한 세가지라 생각된다. 구원을 물려 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 다음 가장 차선책이 이 세가지 임을 기억하며(실은 우리에게는 최선책)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기를 스스로 헌신, 결단해 본다. 이 글은 가슴으로 쓴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18:1-18)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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