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인자야 탄식하라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21:6) 사역을 하고, 영혼을 섬기는 목회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쳤다’라고 생각들 때가 있다. 그런데 가만히 나의 내면을 깊이 살펴 보면 실제로 지친 상황까지 사역을 했다기 보다는 ‘이 정도 하면 되었다’ ‘이제는 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적절한 휴식은 언제나 필요해’ 등과 같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차원으로 내적 생각을 가질 때가 있음을 솔직히 보게 된다. 물론 휴식은 반드시,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연민으로 인한 습관적 휴식 추구는 옳지 못하다. 그런데 나 자신을 볼 때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선지서는 심판을 많이 강조 하지만,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심판의 무서움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한다.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3)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4)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5)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7)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10)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15)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17)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칼의 무서움, 죽이기까지 하는 심판, 심판의 대상은 모든 사람, 반드시 성취되는 심판 등으로 이해 되는 위의 구절들을 보면서, 딱 한가지 드는 생각은 ‘사람을 심판 전에 살려야 된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지금 당장 눈 앞에서 물에 빠져 죽어 가고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그 사람 살릴 궁리와 행동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판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그것도 영원한 형벌의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삶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영혼을 향한 구원의 열정은 그 무엇과도 우선 순위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리 지쳐도, 내 팔이 빠지지 않는 한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기 위해서 팔을 계속 뻗지 않겠는가? 설사 그렇게 해서 내가 죽게 되는 상황이 되어도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영적으로 이미 구원 받은 성도는 순교라는 거룩한 육체적 죽음을 마감할 수 있고, 영원한 상급의 삶으로 인도받는 기대로 나아가는 순교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정리를 하니, 나 자신, 그동안 계산적이고, 어느 정도 게으름을 부리고, 휴식이라는 합리적 요소를 핑게 삼아 자기 연민과 자기 위로에 빠진 목회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이 구절이 가슴을 찔렀다. ‘인자야 탄식 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6) 허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하보다 귀한,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위해서 최선, 최선, 최선, 충성, 충성, 충성을 다하리라~ 내가 섬기는 지역(미시간 대학교 등 많은 학교들이 위치)에는 8월과 9월에는 새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참으로 많다. 공항 영접부터 정착 도움 까지 한 명 한 명에게 많은 힘과 정성,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한다. 조금 전에도 아시아 한 나라에서 8월 말에 학생 한명이 오기에 공항 영접 및 정착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았다. 이런 메일이 아무리 많이 온다 해도, 영혼의 소중함과 구원의 능력을 체험한 섬기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최선/충성으로 영혼을 위해서 온 힘을 다 쏟기를 다짐한다. 허리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 ^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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