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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32]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21:27) 신앙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상황중의 하나가 ‘무감각’해 지는 것이다. 죄를 짓고, 회개하고, 죄를 짓고, 다시 회개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죄의 무서움, 심판의 참혹함에 대해서 무디어 질 수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남들도 다같이 그렇게 죄의 물결 속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나 하나 쯤이야 죄를 더 하는 일에 동참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무감각, 영적 문둥병의 상황은 총체적 타락을 야기하기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벨론의 심판의 칼날을 이스라엘(유다)만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웃 나라) 암몬에게도 하나님은 심판의 칼날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케 하신다(28). 우리는 흔히 ‘나만 아니면 돼’ ‘나는 피할 수 있을 것이야’ ‘쟤네들을 왜저래…’ 등과 같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심판과 관련해서도 나와는 먼 것 처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뿐만 아니라 이 심판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고, 봐주는 것이 없다. 이를 선지자 에스겔은 3번이나 반복적으로 표현하였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경우는 ‘진실로 진실로’ 등과 같이 2회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3회 반복하는 것은 정말로 이례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반복 표현하신다.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27) 세번의 심판 표현은 완전한 심판,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심판, 다시는 기회가 없는 심판, 처절하고, 철저한 심판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심판의 끝에는 이렇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27). 즉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말이다. 더 이상의 심판의 유보나 연기, 봐 주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단 하나의 길만 얘기한다.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27). 유일한 엎드러뜨림에서 이길 수 있는 길, 그 심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말한다. 이 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구원자이시며 심판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메시야)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해결하신 분이시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막힌 휘장을 찢으심으로 지성소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시다. 그 분을 의지할 때 죄 문제가 해결 된다. 그 분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임재, 영광을 체험하게 된다. 그 분을 의지할 때 거룩과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된다. 그 분을 의지할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그 분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은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쇄이다. 십자가는 삶에 사랑과 소망과 평안을 준다. 십자가가 있을 때 공동체가 하나가 된다. 십자가는 생명이고, 능력이다. 십자가는…. 너무도 깊어서, 높아서, 넓어서, 길어서… 평생 묵상하고, 따라가며 살아야 할 길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열거하자면 정말로 끝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십자가는 넓고 깊은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그 처절한 그 심판이 오기 전에 ‘지금’ (왜냐하면 그 마지막 심판은 그 누구도 언제일지 모르기에) 십자가 붙잡고, 십자가 의지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영원한 현재형)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가? 이 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1:18-32)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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