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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33] “죄의 맛, 죄의 값”
“죄의 맛, 죄의 값”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22:14) (글 재주가 없어서.. 글이 길어 졌네요... 절제된 표현과 정제된 표현으로 글이 쓰여 지면 좋겠는데... 쉽지는 않네요... 하루 한꼭지는 쓰는 것이 목표이기에 노력하며 쓰다 보면 조금 더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이해와 격려를 부탁 드리며... 이 글은 다수의 독자나 출판을 위해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려 적는 글이 아니라, 단순히 저의 개인 묵상 정리임을 말씀 드립니다. ^ ^) 선지서를 읽으면서 크게 놀랄 때가 많다. 2500여년 전의 상황을 얘기한 내용이 현대에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거나 적용되는 것을 볼 때, 선지서를 결코 쉽게, 그냥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그 때 당시에 선지자들의 경고를 쉽게, 우습게 여겨서 어려운 결과를 갖게 되었다면, 현대의 성도는 선지서의 말씀을 가슴으로 새겨 듣고, 겸손과 경각심으로 들은 뒤,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똑 같은 범죄, 똑 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가 4절에 나온다.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실은 오늘날 기독교가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더 걱정거리의 대상이 되게 되었고, 상식선의 생각조차 하지도 못하고, 실천도 못하는 가장 기복적이고, 매우 이기적인 집단이 되었으며, ‘여기가 교회도 아닌데 왜 싸우느냐’는 슬픈 유머가 회자될 만큼 교회는 시기와 질투, 싸움의 현장이 되었고, 급기야 기독교라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대신에 ‘개독교’라는 수치스러운 이름, 즉 일반 사회로부터 능욕과 조롱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슬프고, 힘들고, 괴롭고, 수치스럽더라도 냉철하게 현실을 정확하게 봐야 한다. 신앙인과 일반인들의 범죄율 차이가 거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신앙인은 죄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에스겔 선지자 시대의 범죄는 매우 다양하며, 심각하였다. 범죄의 내용들이 삶의 전 영역을 다 망라했으며, 그 정도는 매우 심각하였다. 통치 권력자들의 섬김 대신, 권력욕에 의한 통치(6), 그로 인해 부모(연세 많은 분들), 나그네, 고아와 과부와 같은 가장 사회적으로 약자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국가 정의의 부재(7), 영적 타락(8), 사회 관계적 분리와 분쟁(9), 근친상간과 같은 매우 더러운 상태로 타락해 버린 성적 음행의 삶(9-11), 고리대금업과 같은 경제적 수탈 상황(12) 등 당시의 타락한 상황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타락, 총체적 타락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타락에 대해서 가장 강력한 경고를 주신다.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14).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의 정반대가 되는 악과 죄에 대해서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임하게 되면 견딜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강력한, 무서운 심판을 하나님은 반드시 행하신다고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루리라!’(14). 그러나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위에 열거된 범죄의 구체적인 상황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심각하게 생각할 만큼 마음이 어렵고, 무섭고, 괴롭고, 떨릴 그런 상황일까? 실제로 범죄의 현장은 결코 두렵거나, 더럽게 느껴지거나, 부담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자신의 이권을 더 얻기 위해서 약자를 수탈하는 상황에서 갖게 되는 경제적 이득, 하나님 대신에 나의 안락과 영욕을 추구하는 신앙일탈이 주는 쾌락과 쾌감, 변태 성욕적 행위가 주는 가장 육감적인 쾌감, 물질이 주는 안락함을 생각하면서 수탈일 지언정 벌어 들이게 되는 돈의 강력한 맛 등을 맛볼 때, 그 누가 더럽다고, 부담감 가득 안은채 그러한 범죄 현장으로 향하겠는가? 아니다. 오로지 범죄 상황이 주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달콤한 맛을 입과 영혼에 머금은채 불나방처럼 환상과 기대로 범죄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겠는가? 죄의 맛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일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영혼을 팔면 가장 좋은 삶이 보장된다는 그 유혹(의 맛)에 넘어가는 파우스트 박사처럼 우리도 그렇게 범죄의 순간에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다!’. 범죄의 순간이 그토록 쾌락적이고, 육감적이기에 ‘멈추어라’라고 할 정도로 쾌락 향유로 영혼을 팔아 먹게 되는 것이다. 쾌락의 값은 영혼을 팔아 먹게 되는 영적 죽음, 사망이다. 그러나 그 쾌락의 맛은 그 상황이 계속 되기를 원할 만큼, 그래서 쾌락을 더 즐기기 위해 현시간 그대로 ‘멈추어라’라고 할 만큼 그 맛이 맛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큰 경각심을 갖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오늘의 묵상은 결코 밝거나, 희망적이지 않다. 죄의 권세가 정말로 크고, 죄의 맛이 결코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을 만큼 맛있고, 달콤하며, 그 죄는 삶의 전 영역을 다 망가뜨리고, 결국 이러한 죄의 강력함이 하나님을 믿는 다고 알려진 이스라엘 백성과 오늘날의 교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결국은 죄를 이기지 못할 때 세상으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매우 어둡고, 절망스러운, 부끄러운 상황을 본문은 말한다. 그리고 죄의 맛이 결코 뿌리치기 어려울 만큼 맛있고, 강력함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죄를 제대로 알아야 죄에 대해서 제대로 대항하고, 해결할 수 있다. 죄의 값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벌 심판이다. 그리고 그 심판은 반드시 행해진다(14). 결론은 이렇다. 죄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안다면, 신앙인은 분명히 삶의 매 순간, 가장 진지해 진다. 죄로 만연되고, 얼룩진 현대 문화 속에서 신앙인이 결코 가볍게, 쉽게, 아무 생각없이 살 수 없다. 현대 문화와 이념 등에 대해서 신앙인은 가장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죄의 값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지함의 끝에 깨닫게 되는 유일한 해결책을 신앙인은 바로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루리라’라고 말씀 하신 의미 속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죄 문제를 인간이 결코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시고 죄값을 대신 치루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계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의지하는 것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 의지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거짓된 자가 되거나, 다른 존재(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피조물)를 의지함으로 잘못된 구원의 길을 가는 자가 됨을 의미한다. 둘 다 잘못이다. 그리고 이 잘못은 영벌과 관련되기에 매우 매우 심각하게 지금 돌아 봐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룩하신다’는 표현 속에 가능성, 소망을 우리는 볼 수 있고, 가질 수 있다. 그렇다. 세상 그 어디를 둘러 보아도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아무리 결심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냥 말로만 신앙 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죄도 함께 짓는 타협의 길을 걸어간다. 물론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 전이므로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화(sanctification)의 최상의 단계’까지 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개독교에서 벗어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이룩하신다’고 하셨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면 가능하다. 결국 죄의 값(죽음)에 대한 진지한 자세, 죄의 맛(쾌락)에 대한 심각하고 신중한 자세, 그리고 하나님만이 이룩하시는 구원의 길에 대한 겸손한 자세, 그리고 소망의 자세 등 바른 균형의 자세를 신앙인이 갖는 것이 중요하다. 죄의 강력함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하며, 가장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할 사람들은 신앙인이라 본다. 2천 5백여년 전의 신앙의 선배들은 죄와 하나님, 그리고 심판의 경고에 대해서 진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로 처참하게 끌려 갔다. 2천 5백 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죄의 맛이 아무리 달콤해도 그 속에 영혼을 죽이는 독이 있음을 기억하자! 죄의 값은 죽음임을 기억하자! 그 죄값을 대신 죽음으로 갚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현존재(죄를 즐기는 삶)의 가벼움이여! 값을 수 없는 은혜(하나님의 사랑)의 무거움이여!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2:1-16)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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