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새벽묵상-에스겔34] “한 사람…(a man…)”
“한 사람…(a man…)”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22:30)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신다. 아니,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하신다(?).
한 영혼을 위해서 모든 산수의 개념을 다 넘어 가시는 분이시기에… 100마리 중의 1마리 잃은 양을 찾아 헤매는 것은 산수의 법칙에 맞지 않다. 나머지 99마리가 숫자적으로는 더 소중하지 않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1/n의 개념을 영혼에게는 적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에게는 1이라는 숫자가 소중하기에 그 분은 숫자에 연연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든 관계없이 ‘한 영혼’을 ‘전부’로 대하시기에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왜 이 ‘한 영혼’이 중요한가? 그 영혼이 살아있는 영혼이라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자라면, 그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무엇보다도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유월절 어린양(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으로 인해 영벌을 넘어 영생으로 인도함 받은 자로서 다른 영혼을 위한 ‘생명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영혼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다 투자하시는… 참으로 숫자에 연연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노아 시대 당시 전 인류의 숫자대신에 방주 안의 8명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20세 이상 출애굽자 전부 대신에 가나안에 들어간 단 2명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기드온의 첫 자원자 3만 2천 명 대신에 300명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오병이어 기적으로 다시 구름떼 처럼 몰려운 자들 대신에 단 12명의 생명의 산 떡을 의지하는 자들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숫자 개념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생명의 씨앗이 될(한 알의 밀알이 될) 한 알의 살아있는 씨앗에 초점이 가 계시는 것이다. 그 속에 생명이 있을 때 30배, 60배, 100배의 참된, 풍성한 수확이 보장되고, 그래야 계속, 더 많은 영혼을 향하여 ‘생명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총체적 타락의 모습을 보여 준다. 선지자들도(25), 제사장들도(26), 고관들도(27), 그리고 백성들도(29) 다 타락하였다. 모두가 타락하였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전반적 타락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말씀 선포자가 타락하니 전체적으로 타락한 것이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그 속에 생명이 없는 썩은 씨앗의 다수에 있지 않다. 생명을 가진 소수, 심지어는 단 ‘하나’에 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이렇게 선포하신다.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a man)을 …찾다가 찾지 못하였므로…’(30) ‘한 사람’이 중요하다. 복음을 알고, 복음의 능력의 원천을 알고, 복음적 삶을 아는 그 한 사람… 그래서 예수님은 한 영혼(a man)이라도 ‘제자로 삼으셨다.’
‘그 제자’(the man)는 그의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한다. 이 시대,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 만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기에… 나는 제자인가?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2:17-31)
새벽 Q.T.
Dawn Q.T.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