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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36] “어제 설교를 기억하는가?”
“어제 설교를 기억하는가?”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23:35) 어제(주일이었음) 설교를 기억하는가? 설교자의 고민은 성도님들이 주일 예배 후 교회 파킹장으로 가는 그 순간에 설교의 제목조차 잊어 버린다는데 있다(물론 전부는 아니기를 바라며…). 좋은 책은 통념을 주는 책이 아니라, 통찰을 주는 책이다 라는 말이 있다. 좋은 설교도 마찬가지로 본다. 좋은 설교는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성경의 열거된 내용을 다시 되풀이 하는 차원보다는, 평생 가슴에 품고,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삶의 기본 동기와 원동력을 주는 통찰을 주는 것이라 본다. 통찰(insight)은 영적, 지적, 의지적 도구이다. 이 도구를 가질 때, 삶의 매 순간을 그 통찰력으로 보게 되고, 그 통찰력은 평생 삶의 순간 마다 능력을 발휘하고, 적용,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통념(지적 내용)을 그저 전달해 주는 설교는 금방 잊어버리기 쉽지만, 통찰(영적 깨달음, 영적 지혜와 원리)을 주는 설교는 쉽게 잊혀지지 않게 된다. 기억한다는 것은 나쁜 것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계속 되새기며,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은 악으로 기억되어야 하기에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선은 반드시 기억되어 삶의 매 순간 적용되어야 하기에 이 또한 되풀이 됨을 통한 삶의 능력으로 습득되어야 한다. 둘 다 기억의 문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그만큼 비효율적이다. 꼭 필요한 것을 기억함으로 삶의 기저를 바르게 잡아 놓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이스라엘과 유다(오홀라와 오홀리바 자매로 비유)가 철저하게 타락하고, 처절하게 음행하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 한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35). 하나님과 이방신은 상극 관계이다. 아니, 시소처럼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가는 그런 반비례 관계이다. 한쪽이 100퍼센트 올라가면, 다른 쪽은 땅에 붙여지게 되는 0퍼센트의 모습을 갖는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거룩이 회복된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음란과 음행은 들어올 길이 없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생령이 되어, 생명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과 힘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기도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묵상이다. 하나님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 참된 신앙 공동체이다. 하나님을 기억함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것이 선교이다. 오늘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만큼, 내 삶은 영적 음행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세상은 세속화 되었고, 우리가 보는, 듣는 많은 것이 영적 음행으로 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을 얼만큼, 어느 정도로, 어느 시간때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거룩정도가 좌우된다. 부디 영적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말기를…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3:22-35)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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