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인자야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26:2)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와 위도가 비슷하면서 지중해 해안 가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리스, 로마 등과 연결되는 지역이기에 늘 왕성한 교역, 문화의 중심지, 물질의 풍성, 정치적 요지 등의 지역이다. 빌라도의 관저가 있는 지역일 정도로 외교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인접한 곳이기에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는다. 그래서 성경에 두로와 시돈은 매우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가깝다 보니 한 쪽의 상황이 다른 쪽에 영향을 크게 끼친다. 이스라엘이 어려우면 두로가 덕을 보고, 두로가 어렵게 되면 이스라엘에 영향이 가게 된다. 한반도 주변의 일본, 중국 등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한국 전쟁 등으로 인해 일본이 크게 경제적 성장의 기회를 입은 경우처럼. 본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두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이스라엘)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2). 이스라엘(유다)이 전쟁으로 어렵게 되면 당연히 그 이웃 나라는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대적 이득을 볼 수 있기에 두로는 자신들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 것이다. 이기적, 물질 중심적 관점이기에 이런 표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로소득, 공짜, 횡재를 바라는 두로를 향하여 하나님은 완전히 멸하실 것을 경고하신다.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14)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21) 실제로 두로는 역사 속에 사라진 나라가 되었다. 이웃 나라의 어려움 때문에 자국이 이익을 보는 것은 올바른 소득의 과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삶의 원리는 ‘일한 만큼 먹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공짜는 없다. 자연의 모든 상황은 농부의 수고가 들어가야 한다. 비와 햇볕의 공급도 우리가 볼 때는 공짜이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신 덕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우리가 볼 때는 기적이지만,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구원은 우리에게는 선물이고 공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으로 그 값을 ‘정확하게, 정당하게’ 치루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얘기하면 구원은 공짜가 아니다. 하나님의 생명값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공짜는 없다. 그러나 두로는 이웃 나라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기의 나라에 불로소득이 생길 것이라 하면서 좋아했다. 하나님은 이를 심판하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원리를 기억한다면, 교회와 성도는 결코 불로소득, 공짜 등을 좋아해서 안된다. 추구해서는 안된다. 로또는 사면 안된다. 복지기금 조성 목적이라면 차라리 복지기금 후원을 따로 하는 것이 맞다. 땅값이 갑자기 올라서 벼락 부자 되는 것을 성도는 좋아하면 안된다. 교회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가, 그 땅값이 매우 크게 올랐다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교회와 성도는 모든 삶과 과정에 정당한 과정과 값을 치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원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피 값으로 치루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 값을 치루지 못하기에 대신 죽어 주심으로 구원해 주신 것을 은혜라 한다. 은혜는 가장 큰 값이다. 이 은혜의 값을 제대로 이해한 자가 구원받은 성도이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는 공짜 좋아하면 안된다.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2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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