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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여호수아2] “야곱이 ‘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다…”
“야곱이 ‘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1:5) 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이지, 모세의 신앙을 모세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믿고 따랐던 그 하나님을 자신이 의지하고, 따름으로 신앙으로 갖게 된 것이다. 신앙인들은 자녀에게 자신의 신앙 자체를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없다. 하나님은 육신의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 준다고 물려 주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신앙으로 살아가는 신앙적 삶, 모범적 삶을 통하여 자녀에게 신앙적 삶을 살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 후대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5)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표현한다. 이삭이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고, 야곱의 자신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적 신앙 고백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스스로 한 것이다.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그런)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라고 하였다. 자기를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개인적, 인격적 신앙의 자세를 가졌기에,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도 그런 개인적, 인격적 신앙을 가지라고 권면한 것이다. 하나님은 간접적인 관계를 통해 신앙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직접적, 인격적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지 못하면 결코 신앙은 진실한 신앙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생명력있게 역사하는 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시간을 뛰어 넘고, 어떤 공간도 뛰어 넘는다. 말씀은 성령께서 실제로 역사하시기에 읽는 자에게 생명으로 다가간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직접적으로 만나는 길은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말씀을 기록케 하시고 읽을 때 조명케 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직접 만나게 된다. 말씀(공부)은 단순한 이론 교육이 아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살아있는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되게 만들고 이끄는 살아있는 능력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8). 성령님을 의지하며 자녀들에게, 믿음의 공동체 식구들에게, 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게 전하고 나누는 말씀 선포와 말씀 교육은 신앙의 본질로 들어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살아있는 말씀을 접할 때 간접 신앙이 아니라, 개인적/인격적 신앙을 갖게 될 것이다. 말씀교육이 신앙교육의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여호수아서 1:3-9)
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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