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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39장] "교회를 보며 세상은 무엇을 보는가?” (겔 39:1-29)
[새벽묵상-에스겔39장] "교회를 보며 세상은 무엇을 보는가?” (겔 39:1-29)
“교회를 보며 세상은 무엇을 보는가…”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39:6) 38장에 이어 39장에서도 마곡 연합군의 왕인 곡에 대한 심판(즉 사탄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성취되고(8), 완전한 평화(7은 완전수)가 이루어 지며(9), 땅이 정결케 되고 거룩케 될 것입니다(12). 지금 비록 바벨론 포로 기간 중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 되기에 억압과 포로의 기간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소망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의 도구로 나아갈 때 온 열방은 하나님 나라의 참 능력과 복음의 기쁨으로 인도함 받게 됩니다(21). 참으로 큰 소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본문 묵상하면서 한가지 표현이 더 와 닿았습니다.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6) 성경에서 섬은 온 열방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섬은 바다로 둘러 쌓여 있고, 그 바다를 통해 온 대륙에 닿을 수 있기에 섬을 표현하는 것은 열방 전체를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세상, 즉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속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불, 심판을 표현한 것이 6절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열방에 거주하는 자들을 ‘평안히’ 거주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번역본들에서는 ‘안심하며’ 혹은 ‘편안히’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편안하거나, 마음이 평안한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평안과 편리함, 편안함이 하나님 없이, 인간만을 위한, 자기 만족의 목표로 세워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바벨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지위까지 넘보려고 높게,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바벨탑을 쌓게 되면, 그 결과는 가장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몇 년 전에 동남아 지역 여러 선교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들이 성행하는 지역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곳 곳을 방문하며 제가 가장 크게 느끼고,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일반 종교들이 아니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연약함에서 절대적, 영원한 것을 의지하는 종교심에 의해서 나온 일반적 현상이기에 참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참된 생명이 없고, 진정한 진리가 아니기에 참된 자유도 주지 못합니다. 전통과 문화화된 상황, 종교적 사회적 집단 상황으로 인해 종교적 삶을 사람들이 살아갈 따름입니다. 실제로 아시아 지역을 다녀 보면서 그런 종교적 삶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바로 ‘세속주의’(secularism)였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는 물질주의, 외형주의, 현세주의, 쾌락주의 등이 모든 종교 위에 높은 빌딩들과 메가 몰 등의 형식으로 군림하고 있었고, 고고하게 보이는 종교성과 도덕적 모습은 한계있는 겉치레의 모습일 따름이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세속주의이고, 그 기본에는 인간이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는 인본주의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라를 통해서 표현한 ‘섬에 평안히(편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불을 내리리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더 강하게 깨닫는 돌아봄이었습니다. 문명 발달과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학의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는 문명 발전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멋지고, 편안하지만, 결국은 무너집니다. 교회가 기복주의를 가르친다면 이 또한 큰 잘못입니다. 교회가 문명발전을 추구하지 않고 산 속에서만 있다면 이 또한 문화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잘못입니다(창 1:27-28). 그러나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선포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편안한 세상 만드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라고 생각하며 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은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한 우울과 불안과 갈등, 그리고 결국 드러나게 될 처절하게 더러운 이기적 본성에 의한 관계의 갈등, 국가간의 전쟁 등으로 세상은 혼돈(바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큰 기도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런 평안과 편안을 버리고 메뚜기, 석청, 황량한 벌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의 외형이 너무 호화롭거나, 신앙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거룩과 능력이 드러나기 전에 외적인 부분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우리 안에 계신,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거룩, 영광만이 드러나서 세상에 이것이 진짜 능력이고 기쁨임을 보여 주는… 그런 세례요한과 같은 삶이 다시 주님 오시기 전에 교회와 성도가 가져야 할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를 보며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볼까요? 교회 건물과 조직, 숫자를 볼까요?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과 영광을 볼까요? 후자가 되기를… 저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만 드러내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편안’(평안)이 궁극적 목표가 아님을 세상이 알도록…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3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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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Dawn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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