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에스겔44장]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겔 44:1-31)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44:9) 에스겔 40장부터 성전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42장에 이어 44장에도 성전의 사역을 섬기는 제사장에 관해서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하드 웨어가 있고, 그 하드 웨어의 기능이 잘 수행되도록 하는 소프트 웨어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성전의 사역은 제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아야 함을 말하며(9), 양털 옷과 같은 화려한 옷 대신에 가는 베옷으로 입고(17), 외형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의 모습을 가져야 하며(19-27), 하나님만을 기업으로 삼는 자(28)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신약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볼 수 있고, 또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벧전 2:9). 그리고 유명한 에스겔 44장 1-2절에 나타난 성전 동문은 하나님만이 들어 올 수 있는 문이라고 환상 가운데 보여 주시는데, 이 문은 실은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전의 본질이 회복됨을 말해 주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이룩하심으로 닫혀 있던 동문을 넘어 성소를 넘어 지성소까지 휘장을 찢으시고 들어가심으로 이 성전은 온 세상을 향하여, 온 세상을 위하여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가장 유일한 기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구원 사역의 중차대한 도구의 역할을 교회는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너무나 두렵고 떨림, 중차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신학교 다닐 때 조직신학의 영역이 신학서론(말씀), 성부론, 인간론(인죄론), 성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내세론) 등의 영역으로 배웠는데, 목회 현장에서 교회론이 나머지 6영역을 다 실천하는 영역임을 깨달으며,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몸소 체험하며 목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목회 현장에서 깨닫는 진리는 너무나 평범한 표현입니다.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결정된다.’ 이 말은 단순히 외적 발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진실로 드러나기에 교회의 영적, 관계적, 내적 등 전인적 수준이 결국은 다 드러 난다는 말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굳이 설명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교회의 수준이 어떤지… 아무리 겉만 번지르르 하다고 일시적으로 좋게 환호할 수 있지만,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도 영적 존재이기에 그 영적인 실재를 일반 사람들도 영적권위에 대한 깨달음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결코 가릴 수 없습니다. 실체는 실제로, 실재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은 결정됩니다. 물론 여기서 강단의 수준은 설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영적, 내적, 외적, 사회적 영역 등 전인적 영역을 말할 것입니다. 44장에 표현된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은’ 의미와 거룩의 전인적 문화적 영역이나, 하나님만을 기업(유산 및 재산)으로 삼는 등의 표현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전인적 신앙 수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성도님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 본문은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는 장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소망의 격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소의 동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귀 타시고 입성하실 때 들어가신 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에게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일으켜 세운 곳이 바로 이 미문(동문)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을 열고,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한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지성소를 열어 놓으셨기에 예수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제자로서 믿음으로, 소망으로 따라 가면 주님께서 함께 그 멍에를 져 주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마태 11:28-30).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정해지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수준만큼 세상의 수준이 정해지는 것’ 또한 부담되지만 맞는 말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교회/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한 부담감을 늘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을 ‘구주’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 그리고 그 구원이 나 개인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한 목적임을 깨닫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주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세상의 수준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길입니다. 목회자인 저 자신이 어떤 때는 세상 사람처럼 살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현세적이고, 또 결과와 성취를 목표로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설교 준비할 때는 십자가의 삶, 제자의 삶을 다시 묵상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중에 많은 경우, 그냥 교회 사역하는 몇 시간 정도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지, 그렇지 않은 때는 저의 의식/무의식 영역에서 성공과 성취, 결과에 연연하는 저의 내면을 요즈음처럼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개인 묵상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많이 가져야 하는 기간에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강단의 수준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주님으로, 스승으로, 주인으로, 신랑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수준을 말합니다. 그 수준이 주님만 따르는 수준이 될 때, 성전의 동문이 열리고, 지성소의 모습이 세상에 선포됨으로 세상의 수준이 거룩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주일입니다. 깊은 묵상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진실한 예배로 오늘 지내기를 소망하며… 그리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강단의 수준이 주님의 제자로서 진실하게 따르는 온전한 제자의 삶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 드립니다. 어려운 기도이지만, 기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주님 가신 그 길, 십자가의 그 길을 남은 평생 벗어나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를 간절히 소망/기도 드립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4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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