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묵상-에스겔44장]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겔 44:1-31)

by AAHC posted Apr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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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에스겔44장]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겔 44:1-31)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44:9)

 



 

에스겔 40장부터 성전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42장에 이어 44장에도 성전의 사역을 섬기는 제사장에 관해서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하드 웨어가 있고, 하드 웨어의 기능이 수행되도록 하는 소프트 웨어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성전의 사역은 제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아야 함을 말하며(9), 양털 옷과 같은 화려한 대신에 가는 베옷으로 입고(17), 외형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의 모습을 가져야 하며(19-27), 하나님만을 기업으로 삼는 (28)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신약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있고, 같은 제사장이라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라 있습니다(벧전 2:9).  그리고 유명한 에스겔 44 1-2절에 나타난 성전 동문은 하나님만이 들어 있는 문이라고 환상 가운데 보여 주시는데, 문은 실은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전의 본질이 회복됨을 말해 주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땅에 오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이룩하심으로 닫혀 있던 동문을 넘어 성소를 넘어 지성소까지 휘장을 찢으시고 들어가심으로 성전은 세상을 향하여, 세상을 위하여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가장 유일한 기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땅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구원 사역의 중차대한 도구의 역할을 교회는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너무나 두렵고 떨림, 중차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신학교 다닐 조직신학의 영역이 신학서론(말씀), 성부론, 인간론(인죄론), 성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내세론) 등의 영역으로 배웠는데, 목회 현장에서 교회론이 나머지 6영역을 실천하는 영역임을 깨달으며,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몸소 체험하며 목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목회 현장에서 깨닫는 진리는 너무나 평범한 표현입니다.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결정된다.’  말은 단순히 외적 발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진실로 드러나기에 교회의 영적, 관계적, 내적 전인적 수준이 결국은 드러 난다는 말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굳이 설명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교회의 수준이 어떤지  아무리 겉만 번지르르 하다고 일시적으로 좋게 환호할 있지만,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도 영적 존재이기에 영적인 실재를 일반 사람들도 영적권위에 대한 깨달음을 어느 정도 느낄 있다고 봅니다.

 

결코 가릴 없습니다.  실체는 실제로, 실재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은 결정됩니다.  물론 여기서 강단의 수준은 설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영적, 내적, 외적, 사회적 영역 전인적 영역을 말할 것입니다.  44장에 표현된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은의미와 거룩의 전인적 문화적 영역이나, 하나님만을 기업(유산 재산)으로 삼는 등의 표현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전인적 신앙 수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땅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성도님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는 장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소망의 격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소의 동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셔서 나귀 타시고 입성하실 들어가신 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에게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일으켜 세운 곳이 바로 미문(동문)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을 열고, 대제사장으로서 영원한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지성소를 열어 놓으셨기에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제자로서 믿음으로, 소망으로 따라 가면 주님께서 함께 멍에를 주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마태 11:28-30).

 

강단의 수준만큼 교회의 수준이 정해지는 맞는 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수준만큼 세상의 수준이 정해지는 또한 부담되지만 맞는 말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교회/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을 구주’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 그리고 구원이 개인의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목적임을 깨닫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주님만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세상의 수준을 바르게 이끌 있는 길입니다.

 

목회자인 자신이 어떤 때는 세상 사람처럼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현세적이고, 결과와 성취를 목표로 하기도 하고그러다가 설교 준비할 때는 십자가의 , 제자의 삶을 다시 묵상하고, 그렇게 살겠다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중에 많은 경우, 그냥 교회 사역하는 시간 정도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지, 그렇지 않은 때는 저의 의식/무의식 영역에서 성공과 성취, 결과에 연연하는 저의 내면을 요즈음처럼 밖에 나가지 못하고, 개인 묵상의 시간을 어쩔 없이(?) 많이 가져야 하는 기간에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강단의 수준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주님으로, 스승으로, 주인으로, 신랑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진정한 영적 수준을 말합니다.  수준이 주님만 따르는 수준이 , 성전의 동문이 열리고, 지성소의 모습이 세상에 선포됨으로 세상의 수준이 거룩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주일입니다.   깊은 묵상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진실한 예배로 오늘 지내기를 소망하며그리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강단의 수준이 주님의 제자로서 진실하게 따르는 온전한 제자의 삶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 드립니다.

 

어려운 기도이지만, 기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주님 가신 , 십자가의 길을 남은 평생 벗어나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를 간절히 소망/기도 드립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매일 성경-새벽 묵상 / 에스겔서 4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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